서울신문 기자들 "사옥 이전 의견수렴부터"… 사장 "예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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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이 사옥(한국프레스센터) 재건축 추진을 이유로 대주주인 호반건설 본사 건물로의 이전을 사실상 확정하자 편집국 기자들이 “구성원 동의 없는 ‘우면동 호반파크 사옥 이전’에 반대한다”며 사옥 이전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사옥 재건축과 업무공간 이전이라는 중대한 계획이 사내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 노조가 제동을 거는 등의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자들이 직접 연판장을 돌리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곽태헌 사장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할 게 아니라 경영진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일축하며 예정대로 10월 중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서울신문이 프레스센터 재건축 추진과 사옥 이전 방침을 공론화하자마자 빠르게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주인 없는 회사’였던 서울신문에 호반건설이란 대주주가 들어선 지 8개월여 사이에 기사 삭제 사건부터 재건축, 사옥 이전 논란까지 연거푸 이어지며 기자들 사이에선 ‘사내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 ‘절망적이다’란 호소가 새어 나오고 있다.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 56명은 지난 19일 저녁 ‘호반파크는 프레스센터가 될 수 없습니다’란 제목의 공동성명을 냈다. 10년차 이하 평기자들이 주로 참여했고, 일부 팀장과 부장급 기자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성명에서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졸속 이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밀실에서 사옥 이전을 100% 확정지은 경영진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프레스센터 재건축 추진 맞물려… 서울신문 기자·대주주 호반 ‘대립 구도’

지난해 10월 취임한 곽 사장의 공약이기도 한 프레스센터 재건축 문제가 수면으로 떠 오른 건 최근 들어서다. 김상열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이 지난달부터 서울신문 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지며 프레스센터 재건축과 사옥 이전에 관한 얘기를 꺼냈고, 곽 사장은 지난 7일 국·실장 회의에서 이 문제를 공식 언급했다. 사옥을 이전할 장소와 그 시기까지 사실상 정해진 뒤였다. 서울신문 내부는 술렁였다. 처음에 노조는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난 10일 뒤늦게 전 사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려다 사측의 요청을 받고 보류하더니, 지난 14일 사장 등 경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한 뒤 “재건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경영진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조라는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지자 기자들은 점조직으로 모였다. 저연차 기자들을 중심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이에 동의하는 기자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임시 이전 장소 또한 왜 하필 서울 외곽의 우면동 호반파크인지도 의문”이라며 “재건축을 핑계 삼아 경영진의 뜻에 순응하지 않는 서울신문 구성원을 호반파크 아래에 두고 길들여 ‘식물 언론’, ‘죽은 기자’로 만들겠다는 속셈인가?”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김상열 회장, 곽태헌 사장, 황수정 편집국장을 향해 “사옥 이전 결정을 철회하고 구성원 전원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부터 시작하라”며 답변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음날 전해진 건 ‘사장이 화가 많이 났다’는 것과 10월에 예정대로 옮긴다는 결정의 재확인이었다.

노조 미온적 태도에 기자들 직접 연판장 돌려… 사장 “의견수렴 사안 아냐”

곽태헌 사장은 21일 본지 기자와 만나서도 재건축과 사옥 이전 문제는 의견 수렴 대상이 아니란 점을 분명히 했다. 곽 사장은 “노무현 정부 때 정부부처의 세종시 이전을 결정하고 MB정부 때 실행됐는데, 그때 공무원들의 의견을 들어봤나?” “중앙일보가 상암동 갈 때 기자들이 찬성해서 간 거냐?”면서 “의견을 다 물어보면 어떻게 결정하냐”고 했다. 이호정 상무이사도 2016년 프레스센터를 공동 소유한 서울신문과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맺은 ‘사옥광장개발과 자산가치 증진을 위한 계획’ 협약서를 보여주며 재건축이 갑작스레 불거진 이슈가 아닌 숙원 사업이란 점을 강조했다. 기획재정부가 코바코와 서울신문 대주주이던 시절엔 “정권의 연속성이 없으니 사업 또한 연속성이 없었”지만, “대주주가 바뀌며 오너 있는 회사가 됐으니 숙원 사업을 심지 있게 가져가보자”는 것이란 설명이다. 재건축 인허가 등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무실부터 이전하는 것에 대해선 “서서히 단계적으로 거점 분할을 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하필 호반파크냐’는 물음에 곽 사장은 광화문 인근 등에서 사무실 7곳을 알아봤으나 “건물은 많지만 들어갈 건물은 많지 않았다”면서 “물 좋고 정자 좋은 데는 없으니, (재건축이 끝날 때까지) 잠시 갔다 오는 거니까 대승적 차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면동 호반파크가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임대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것이다. 곽 사장은 그러면서 “재건축 기간 동안 양재동(우면동)에 잠깐 가 있는 건데, 자기들(기자들) 불편하다고 싫다고 하는 건 이기적인 거 아니냐”고 했다.


그러나 이번 성명에 참여한 A 기자는 “단순히 거리가 멀다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론사가 한 마디로 건설사 그룹 사옥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그건 분명히 엄청나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B 기자도 이번 사안을 두고 “사옥 이전 그 자체보다도 그 밑에 흐르는 전반적인 의사 결정 방식과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본다. 쉽게 말해서 신뢰의 위기가 사옥 이전, 재건축 문제를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했다. C 중견 기자 역시 “사내에서 설득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비민주적이라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의 대주주가 된 이후 기사 삭제 사건 때부터 여러 차례 기수별 성명을 내며 사측에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으나 제대로 응답을 받지 못한 기자들은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A 기자는 “많이 무기력해졌다. 우리 세대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설마 하던 일들이 다 가시화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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