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뉴스 미디어에 '한 세대 한 번' 있을 기회"

[해외 미디어 돋보기] (6) 뉴욕타임스 '투자자의 날'

뉴스 미디어의 혁신에 대해 얘기할 때 이 회사가 항상 언급된다. 이번에도 뉴욕타임스(NYT)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뉴욕타임스는 워싱턴포스트(WP),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등과 나란히 미디어 혁신의 한 사례로 언급됐다. 하지만 지금은 글로벌 뉴스 미디어 기업 중에서도 ‘뉴욕타임스’는 넘버원 벤치마킹 대상이자 ‘원톱’이 됐다.


그 이유를 지난 13일(현지시간) 개최된 뉴욕타임스 ‘투자자의 날(Investor Day)’에 더 자세히 알게 됐다. 뉴욕타임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투자자의 날’에 맞춰 온라인으로도 시청할 수 있는 초대장을 받았다(지금은 누구나 시청할 수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개최된 뉴욕타임스 ‘투자자의 날(Investor Day)’에서 비전을 발표하고 있는 1980년생(41세) A.G.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회장 겸 발행인.


이날 투자자의 날은 뉴욕타임스가 어떻게 글로벌 뉴스 미디어의 ‘원톱’이 됐는가를 알 수 있던 이벤트였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방향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날 이벤트는 1980년생(41세) 회장인 A.G. 설즈버거가 지난해 1월1일 회장에 취임 한 후 처음으로 가진 ‘투자자의 날’이었다. 125년째 경영을 하고 있는 설즈버거 가문은 5대를 이어 뉴욕타임스를 부동의 저널리즘 기반 미디어로 성장시켰다. A.G. 설즈버거는 이 가문의 다섯 번째 뉴욕타임스 회장이자 발행인이다. 뉴욕타임스의 원칙과 방향은 이미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뉴스미디어에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날 ‘투자자의 날’에 관심을 끌었던 것은 이벤트를 주도한 A.G. 설즈버거 회장 때문이다.

2016, 2021년 뉴욕타임스 매출, 디지털 매출.


A.G. 설즈버거는 지난 2014년 글로벌 언론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96페이지에 달하는 소위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Innovation Report)’ 작성을 주도하고 집필에도 직접 참여했던 인물이다. 공교롭게도 “뉴욕타임스를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된 버즈피드에 의해 공개된 ‘혁신 보고서’는 힘든 재빠른 경쟁자에 의해 어려워진 뉴욕타임스가 사내외 혁신 활동을 통해 근본적 변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편집국과 비즈니스팀 사이에 협력이 필요하며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짜고 실행할 것을 제안했다. A.G. 설즈버거 회장은 6개월간 354명 인터뷰 진행을 토대로 작성된 ‘혁신 보고서’의 집필자이자 책임자였다.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당시 한국에서도 번역돼 전 언론사에 스티디 바람을 일으키는 등 한국 미디어 지형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3일 열린 뉴욕타임스 투자자의 날은 어떻게 보면 A.G. 설즈버거가 이끌고 책임을 진 ‘혁신 보고서’의 결과 보고의 날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혁신 보고서 제출 이후 ‘보고서’에 담았던 내용을 실행했으며 8년 후인 2022년, 실제로 ‘디지털 퍼스트’ ‘구독 퍼스트’ 기업이 돼 글로벌 미디어, 구독경제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위치를 차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투자자의 날에서 A.G. 설즈버거는 ‘혁신 보고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내용에 담긴 중요한 원칙과 실행에 대해 밝혔다. 그는 “125년 가문의 전통을 앞으로 진화시킨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강력한 저널리즘이 비즈니스를 성장시키고 있으며 비즈니스는 저널리즘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최고 수준의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이 곧 비즈니스이며 그 비즈니스가 바로 저널리즘을 돕는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강력한 저널리즘과 비즈니스의 선순환 고리를 만든 것이 바로 ‘디지털 구독’ 이었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2022년 2월 기준, 종이 신문과 디지털 상품(디지털 신문 구독 및 퀴즈, 낱말 맞추기, 상품 비교 등) 개별 구독자 수가 878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여기에 최근 인수한 스포츠 구독 미디어 디애슬레틱(The Athletic) 가입자(2021년 말 현재 120만명)를 포함하면 전체 구독자는 1000만명을 돌파했다.


설즈버거 회장은 “지난 20년간 전통적 저널리즘의 붕괴를 지켜봤다. 높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것보다 (어디에 나온) 콘텐츠를 모으고 소셜미디어에서 전파하는 것이 더 높은 가치로 여겨졌다. 결국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것을 봤으며 (정보) 양극화 등을 유발했다. 이는 국가적 재앙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한가지 희망이 있다. 새로운 시대가 왔고 퀄리티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뉴스가 가장 중요한 시대다. 독자들의 대화와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사 오너’가 직접 사내 디지털 혁신을 주도, ‘혁신 보고서’를 집필했으며 8년이 지난 2022년, 투자자의 날을 통해 저널리즘의 원칙과 비즈니스의 방향성을 재천명한 것이다. 이는 지난 2014년 밝혔던 원칙과 다르지 않다. 디지털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저널리즘과 비즈니스를 동반 상승시킬 수 있음을 밝힌 것이다.

지난 13일(현지시간) 개최된 뉴욕타임스 ‘투자자의 날(Investor Day)’에서 메러디스 코핏 레비엔 뉴욕타임스 최고경영자가 2022년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투자자의 날에서는 설즈버거의 발언에 앞서 뉴욕타임스 최고경영자(CEO)인 메러디스 코핏 레비엔(Meredith Kopit Levien)의 2021년 성과와 뉴욕타임스의 전략 발표가 있었다. 레비엔 CEO도 모두 발언에서 종이신문(레거시) 중심에서 ‘디지털 구독’으로의 비즈니스 전환이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2022년과 같이 불확실성의 시대엔 모든 관점에서 신뢰받고 고품질의 뉴스 정보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MZ 세대는 디지털 뉴스를 구독하는 데 익숙하다. 가치 있고 품질 높은 디지털 저널리즘을 찾고 있다. 다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레비엔 CEO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2022년을 지나는 이 시점이 ‘세대적 기회’임을 강조했다. 그는 “권위와 신뢰가 있으면 뉴스 미디어에 지불한다. 사람들은 가구 당 하나 이상의 데일리 뉴스를 구독하고 있다. 이것은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기회(Once in a generation)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문에서 뉴스만 보는 것이 아니라 쇼핑 어드바이스, 퀴즈 등을 보고 있다. 세상과 관여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뉴스 영역에서 승리하고자 한다. 가치를 만들어내고 앞서가는 라이프 스타일 프로덕트를 만들어낼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필수 불가결한 정보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향후 비전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투자자에게 5년 후인 오는 2027년까지 1500만 구독자를 돌파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레비엔 CEO는 “매년 9~12%의 성장을 하고 앞으로는 지난 5년보다 더 큰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레비엔 CEO는 투자자의 날 발표에서 앞으로 개별 구독보다 뉴욕타임스의 구독 묶음을 더 많이 내놓겠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뉴스 미디어 기업들의 화두인 ‘상품(Product)’ 중심 전략을 그대로 보여준다. 개별 뉴스가 아닌 전체 ‘상품’으로 보는 시각이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구독자들에게 뉴스, 쿠킹, 게임, 소비자 리뷰, 스포츠 등 개별 구독 상품을 제공하고 있는데 2개 이상의 상품을 구독해 얻은 이득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뉴스 상품과 쿠킹, 게임, 소비자 리뷰 등의 이용자를 교차 홍보하면서 ‘번들’ 이용자로 전환하고 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뉴스 서비스 이용자들이 게임 구독자가 될 수 있고 상품 리뷰를 통해 상품 구매도 유도할 수 있게 한다.


그동안 뉴스 미디어 산업에서 ‘이벤트’나 ‘포럼’ 개최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했지만 뉴욕타임스는 그것을 강조하지 않고 ‘저널리즘’의 강화 그리고 ‘구독 상품’을 만들어서 이를 확장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기존 미디어 기업의 생존 전략과 달라진 부분이다. 뉴스 미디어 기업의 ‘본질’에 집중하면서 이를 통해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것이며 이는 A.G. 설즈버거가 강조한 원칙에도 부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알렉스 하디만 뉴욕타임스 최고 제품 책임자(CPO)는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멀티 프로덕트 가입자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오랫동안 구독자로 남아 있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 번들 구독자들의 이탈률은 뉴스만 이용하는 구독자보다 40% 이상 낮다고 내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레비엔 CEO는 지난해 인수한 스포츠 구독 미디어 디애슬레틱과의 시너지를 기대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5억5000만 달러(7100억 원)에 디애슬레틱을 인수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앞으로 유료 구독자들에게 추가 비용을 내지 않고도 디애슬레틱을 볼 수 있게 ‘번들’로 제공할 예정인데 이는 이용자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해지 방어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뉴욕타임스와 디애슬레틱의 묶음 상품이 안착한다면 뉴욕타임스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향후 구독료 인상 및 광고 플랫폼으로의 영향력 확대 등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가능해진다.


이처럼 뉴욕타임스 투자자의 날 이벤트는 회사의 원칙과 향후 방향을 알 수 있는 자리였다. 한국 뉴스 미디어의 혁신을 바라는 분들에게 홈페이지에 올라온 ‘투자자의 날’ 영상을 꼭 한번 직접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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