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성녀(聖女)' 도로시 스탱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특파원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9개국에 걸쳐 있고, 전체 넓이가 한국 국토 면적의 약 75배인 750만㎢에 달하는 거대한 숲 아마존 열대우림. 지구 생물 종의 3분의 1이 존재하는 이곳을 ‘지구의 허파’ ‘생태계의 보고’라고 부른다. 환경적 가치를 극대화한 표현이다. 그러나 아마존 열대우림은 잔인한 방식으로 환경과 인권 파괴가 이뤄지는 곳이기도 하다. 마약 밀거래와 삼림 무단 벌채·방출, 불법 금광 개발 활동이 극성을 부리고, 그 땅의 주인인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하나 둘 잃어가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벌이는 환경·인권 운동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


지난 2005년 2월 중순, 당시 73세의 미국인 여성 선교사 도로시 스탱은 브라질 북부 파라주 아나푸시 인근 농장 시골길에서 괴한들로부터 6발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스탱 선교사는 1970년대부터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환경 보호와 농민 인권 운동을 벌여 ‘아마존의 성녀(聖女)’로 불렸다. 스탱 선교사 피살은 국제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브라질의 공권력 공백과 사법 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왔다. 경찰 수사 결과 스탱 선교사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농장주의 사주를 받은 살인 청부업자들의 소행으로 밝혀졌고 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아나푸에 묻힌 스탱 선교사는 브라질의 환경·인권 투쟁의 상징이자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큰 영감을 주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스탱 선교사 피살 사건이 17년 만에 소환됐다. 영국인 언론인 돔 필립스(57)와 브라질인 원주민 전문가 브루누 아라우주 페레이라(41)가 지난 5일 브라질 북부 아마조나스주 발리 두 자바리 지역 원주민 마을 인근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의 초동 수사는 관행처럼 더디게 진행됐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두 사람이 무모한 모험에 나섰다가 실종된 것”이라며 무책임한 말을 내뱉어 논란을 자초했다. 유엔과 영국·미국 정부 등이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유명 연예인들까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비난 대열에 동참하고 나서야 대대적인 실종자 수색작업이 벌어졌다. 1주일 만에 실종자들의 소지품이 발견됐고, 열흘 만에 체포된 용의자들이 범행을 자백했다. 범인들은 두 사람에게 여러 발의 총격을 가해 살해한 뒤 시신을 태우고 암매장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범행 현장을 뒤진 끝에 시신 일부를 확보해 신원 확인을 마쳤다.


이번 사건 역시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벌어지는 각종 불법 행위를 고발한 데 대한 보복 차원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필립스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가디언 등에 브라질 관련 기사를 실었다. 아마존 열대우림의 각종 불법 행위에 관한 기사도 당연히 포함됐다. 브라질 국립원주민재단에서 일한 페레이라는 원주민 땅 수호와 인권 보호 운동을 계속해온 ‘원주민들의 벗’이었다.


브라질 가톨릭주교협의회 사목위원회는 올해 1~5월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최소한 21명의 환경·인권 운동가가 살해됐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작년에도 35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사목위원회의 카를루스 리마 사무국장은 열대우림에서 벌어지는 불법행위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정부의 실패’를 지적하면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그러나 2019년 출범 이후 환경범죄에 의도적으로 눈을 감아온 보우소나루 정부에 기대를 걸기는 어렵다.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이후 아마존 열대우림은 강력·폭력 범죄가 끊이지 않는 무법천지가 돼버렸다. 금광 개발과 목축업, 목재 생산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추진되면서 경제적 개발이익 앞에 환경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스탱 선교사와 필립스-페레이라의 죽음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지금도 어두운 거래와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10월 대선에 악재가 될까 두려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필립스와 페레이라의 이름조차 거의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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