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을 호반파크 아래 두고 '식물언론' 만들 셈인가"

호반 본사 건물로 이전 방침에
편집국 기자 56명 공동성명
"일방·졸속적 이전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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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이 사옥(한국프레스센터) 재건축 추진을 이유로 대주주인 호반건설 본사 건물로의 이전을 사실상 확정하자 편집국 기자들이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졸속 이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단체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사옥 재건축과 업무공간 이전이라는 중대한 계획이 사내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되는 것에 대해 노조가 제동을 거는 등의 제 역할을 못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기자들이 직접 연판장을 돌리고 나선 것이다.

출처=서울신문 홈페이지

서울신문 편집국 기자 56명은 19일 저녁 ‘호반파크는 프레스센터가 될 수 없습니다’란 제목의 공동성명을 냈다. 성명 하단에는 참여한 기자들의 이름을 적었는데, 10년차 이하 기자들이 주를 이뤘고, 일부 팀장과 부장급 기자도 이름을 올렸다. 현장에서 뛰는 평기자들 상당수가 성명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성명에서 “사주를 맞이한 지 고작 8개월 만에 서울신문은 중대한 ‘저널리즘의 위기’를 맞았다. 매체와 보도를 사유화하고 이제는 부동산 돈벌이로까지 이용하겠다고 나선 사주와 경영진 때문”이라며 “기자들은 ‘우리의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다음과 같은 입장과 요구를 밝힌다. 김상열 회장, 곽태헌 사장과 경영진, 황수정 편집국장은 답하라”고 했다.

“매체·보도 사유화도 모자라 부동산 돈벌이로 이용하나”

이들은 먼저 “구성원 동의 없는 ‘우면동 호반파크 사옥 이전’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사주조합 주식 매입 당시 ‘사옥 재건축과 근무지 변경에 대한 우려는 하지 말라’고 했던 호반그룹의 입장이 불과 11개월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면서 “재건축 승인을 받기도 전에 서울신문이 먼저 프레스센터를 떠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울신문이 떠난 빈자리는 왜 굳이 서울시와의 5년짜리 임대계약으로 채운 것인가”라고 물었다.

곽태헌 서울신문 사장이 지난해 경영계획서에서 공개한 한국프레스센터 재건축 조감도.

서울신문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만 해도 현 사옥인 한국프레스센터에 계열사인 전자신문과 EBN의 입주를 추진했다. 호반그룹사인 서울미디어홀딩스 세 매체를 한데 모은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김상열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이 서울신문 직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프레스센터 재건축과 사옥 이전에 관한 얘기가 나왔고, 지난 7일 곽태헌 사장이 국·실장 회의에서 “부분 이전 검토” 등의 방침을 밝히면서 거꾸로 서울신문이 전자신문과 EBN이 이미 입주해 있는 우면동 호반파크로 이전하는 것이 기정사실화됐다.

이 과정에서 사내 의견 수렴 절차는 생략됐다. 지난 3일까지만 해도 “사옥 이전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했던 서울신문 노조는 지난 10일 시작하려던 사무실 이전과 관련된 사내 설문조사 계획을 사측의 요청을 받고 보류하더니, 지난 14일 곽태헌 사장 등 경영진과 간담회를 진행한 뒤 “재건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경영진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조라는 구심점이 사실상 사라지자 기자들은 점조직으로 모였다. 저연차 기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졌고, 이에 동의하는 기자들이 하나둘 합류했다. 이렇게 나온 성명에서 이들은 “임시 이전 장소 또한 왜 하필 서울 외곽의 우면동 호반파크인지도 의문”이라며 “재건축을 핑계 삼아 경영진의 뜻에 순응하지 않는 서울신문 구성원을 호반파크 아래에 두고 길들여 ‘식물 언론’, ‘죽은 기자’로 만들겠다는 속셈인가? 곽태헌 사장은 본인의 성과를 위해 후배들을 불분명한 미래로 떠넘기는 것은 아닌가?”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프레스센터 사옥은 서울신문 118년 역사의 산 증인이자 우리의 자부심”이라며 “무엇보다 호반그룹 스스로 밝혔듯 재건축은 ‘만에 하나 구성원의 총의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경우’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중략) 공론화 과정을 멋대로 생략한 채 밀실에서 사옥 이전을 100% 확정지은 경영진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영진은 세세하게 밝히고 투명하게 소통하라. 그렇지 않으면 사옥 이전은 ‘땅값 비싼 광화문에서 임대사업이나 하겠다’는 소리로 들릴 뿐”이라고 일갈했다.

“언론사가 건설사 사옥에 들어가는 건 상징적 의미”

이들은 또한 “현실화된 ‘편집권 침해’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획 기사 삭제 사태’ 이후 편집국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며 “경영진에 의한 편집권 침해는 더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미 편집국 안에서는 편집권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소통조차 할 수 없다”며 “내부 구성원이 문제를 제기해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뚜렷한 대책으로 응답받지 못한 채 뭉개지는 것이 지금의 서울신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이들은 편집과 경영의 분리 원칙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이를 위해 편집국 내 ‘공정보도실천위원회’를 구성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사옥 이전 결정을 철회하고 구성원 전원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부터 시작하라”면서 “프레스센터 재건축이 추진되는 전 과정을 사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출처=서울신문 홈페이지

그러나 20일 기자협회보 취재에 따르면 기자들의 성명에 대해 곽태헌 사장이 화가 많이 났으며, 10월에 예정대로 (사무실을) 옮긴다는 방침이 편집국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 1월 기사 삭제 사건 때부터 여러 차례 기수별 성명을 내며 사측에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으나 제대로 응답을 받지 못했던 기자들은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사무실 이전을 계기로 ‘줄퇴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성명에 참여한 한 기자는 “단순히 거리가 멀다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론사가 한 마디로 건설사 그룹 사옥에 들어가는 거 아닌가. 그건 분명히 엄청나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는 이번 사안의 본질을 “신뢰의 위기”로 표현했다. 이 기자는 “(이번 성명은) 사옥 이전 그 자체보다도 그 밑에 흐르는 전반적인 의사 결정 방식과 운영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본다. 쉽게 말해서 신뢰의 위기가 사옥 이전, 재건축 문제를 계기로 터져 나온 거다. 사옥 이전 문제만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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