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물 출연의 어려움

[언론 다시보기]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는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기자지만, 라디오에 고정 출연 중이고 가끔 TV 등 영상물에 출연할 때도 있다. 그런데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영상물이다. 기사는 편집자가 고치거나 의견을 줄 때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내가 확인하고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고정 출연 중인 라디오도 대본은 내가 쓰고 프로듀서의 의견을 들으면서 녹음한다.


영상물이 어려운 건 내 의사와 다른 말이 내 대사로 된 대본으로 올 때가 있어서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한국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좌담회 같은 프로그램인데 대본엔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베스트 3’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대본을 받았을 때 “저작권 문제로 영상이나 장면 사진을 준비할 수 있는 작품이 이 세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 세 작품으로 소개했으면 한다”고 부탁을 받았다. 그런데 대본을 만들기 전에 나한테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세 편 중 두 편은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드라마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로 바꿔달라고 이야기할까 고민했다.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녹화까지 시간이 많이 없었고 ‘저작권 문제’라고 하는데 다른 드라마의 영상이나 장면 사진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엔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결국 대본에 있는 세 작품을 소개했다. 세 편 모두 내가 본 드라마라서 ‘좋아하는 이유’ 부분은 내가 생각해서 말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역시 녹화하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기자로 평소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소개하는 기사를 쓰는데, 이 영상물을 본 사람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후회가 남았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역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데 보내온 대본 중에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었다. 그 때도 대본을 받고 녹화까지 시간이 많이 없었고,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을 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가장 마음에 걸린 부분은 ‘태평양 전쟁 때 황거(천황의 거처)가 미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부분인데 내가 알기론 그런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다는 증거 자료를 찾는 것은 어렵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이 부분은 역사적 사실과 다른 것 같다”고 작가한테 이야기했다. 작가는 “확인하고 수정하겠다”고 했지만 녹화 전에 받은 최종판 대본도 그 부분은 그대로였고, 녹화 중에 대사를 보여주는 모니터에도 그대로 나왔다. 나는 모니터에 나온 대사는 무시하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이야기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나에게 한국어는 외국어다. 여유 있게 대처할 정도의 능력은 안 된다. 그런데 방송되면 그것이 작가가 준비한 대본 내용이었다고 해도 기자인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무엇보다 잘못된 정보를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


영상물에 아예 안 나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지만, 내가 안 나가도 누군가는 나간다. 출연자가 말하는 대사에 대해 좀더 배려해줬으면 한다. 사실 확인이 가능한 시간적 여유를 주고 대본을 주거나, 가능한 본인의 의사에 반한 내용이 되지 않게 미리 상의를 하거나, 역사적 사실은 심중하게 확인하거나. 내가 이렇게 쓰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여기서 다시 한번 부탁을 해본다. 보다 정확하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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