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 뉴스룸 인력배치 논의로 확대하자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대법원 임금피크제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만으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에 노동계에서는 ‘임금피크제 폐지’ 요구가 나온다. 산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서며 줄소송 우려도 나온다. 언론계에서도 혼란은 불가피해 보인다. 일부 언론사 노조에서는 임금피크제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년유지형’에 국한되긴 했지만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상황에서 해당 제도의 당사자들이 가만히 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서 대응에 나서고, 노조가 이를 지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임금피크제의 주요 대상은 정년을 앞둔 중장년층 노동자지만, 기성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국내 임금피크제 확대를 추진한 주요 명분의 하나는 ‘청년실업 극복’이었다. 중장년층의 임금이 깎이는 만큼 민간과 공공영역의 청년 고용이 확대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희생은 청년세대의 희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 3월 기준 청년 체감실업률이 20%에 달하는 등 청년층 취업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번 대법원 판결 이후 “인건비 절감액이 신규채용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것은 심정적 희망이었지 제도적 환원이 아니었다”고 논평했다.


언론계 상황도 다르지 않다. KBS는 정년을 2년 연장하는 대신 기본급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2016년부터 도입하면서 “청년 실업 문제 해소 차원에서 신입사원 채용 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8년 퇴직자 대비 신규 충원율은 64.3%에 그쳤고, 2019년과 2020년에는 신입기자 공개채용을 아예 진행하지 않았다. 저연차 기자의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현장에서는 “사람이 없다”는 곡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언론사 가운데 인력 규모가 가장 큰 편인 KBS가 이 정도라면, 다른 언론사의 사정은 짐작할 만하다.
임금피크제는 시니어의 정년을 보장하면서 은퇴 이후를 준비할 여유를 주고 청년의 고용을 늘리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언론사의 임금피크제는 인건비를 줄이는 쪽에 집중됐을 뿐, 고연차 기자 활용이나 신규채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렇다 보니 언론사의 역피라미드 조직 구조는 공고화되고, 인력난에 허덕이는 뉴스룸 환경에서 세대 갈등 문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언론노조가 진행한 간담회에서 한 5년차 기자는 “후배들끼리 있으면 ‘선배들은 뭐하나, 우리만 일하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반면 고참급 기자들은 한정된 간부 자리를 맡지 않으면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진다고 토로한다. 언론사 조직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이직을 하는 기자들도 늘고 있다. 언론계의 임금피크제 논의에 뉴스룸 인력배치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최근 일부 고참급 기자들은 언론사의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서 ‘디지털 전환’을 이끌고 있다. 정년에 가까운 연차지만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도 있다. 포털 환경에서 언론사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고참급 기자들이 새로운 역할을 주도하는 것이다. 고참급 기자들의 풍부한 취재 경험과 네트워크는 언론계의 자산이다. 고참과 막내가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임금피크제는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모두의 담론이 되어 노동자의 권익을 중심으로 논의될 수 있다. 후배는 반드시 선배가 된다.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임금피크제 논의가 뉴스룸 인력구조에 대한 재설계와 함께 세대 갈등을 극복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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