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손성원 한국일보 기자의 기자페이지 소개란엔 이렇게 적혀 있다. 무릇 감성보다 이성과 논리가 앞서야 할 기자가 마음을 어루만지겠다니…? 그런데 이 기자, 마음 돌봄에 진심이다. ‘마음청소’, ‘별별치유’, ‘1분 심리학’ 등 누군가의 지치고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기사를 쓰고, 그런 콘텐츠를 큐레이션 해주는 뉴스레터 ‘터치유’도 만들고 있다. 터치유(touch you)는 다른 말로 ‘치유하는 터전’을 뜻한다.
“제가 마음에 관심이 많아서요.”
3년 가까이 정신과 상담을 받았고, 견습기자 시절엔 한국일보의 정신 상담 코너 ‘오은영의 화해’를 스크랩까지 하며 읽었던 ‘마음덕후’인 손 기자는 TV에서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주위 사람들이 ‘코로나 블루’(코로나 우울)를 겪는 걸 보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사회적 이슈로 다뤄볼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말 ‘나만의 출입처’를 주제로 한 사내 공모에 당선되면서 자연스럽게 “덕업일치”가 이뤄졌다. 현재 그의 출입처는 ‘타인의 마음’인 셈이다.
평소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전문 서적을 두루 섭렵해온 그는 ‘마음 돌봄 기자’가 된 뒤로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마음치유에 도움이 되는 공간, 워크숍, 콘텐츠 등을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으로 체험하고 추천하는 데도 열심이다. 이것을 그는 “무궁무진한 블루오션”이라고 했다. 2주에 한 번은 엄선한 콘텐츠를 마음 앓이 중인 독자들에게 편지로 띄운다. 지난 2월 시작한 뉴스레터 터치유는 오픈율이 40~45%에 달할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손 기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도 전한다. 개인 블로그(브런치)를 소개하며 자신의 병명, 정신과 의사에게 “기자를 꼭 해야겠어요?”란 말까지 들었던 사연 등을 솔직하게 공개했다. 이래도 될까? 고민도 됐다. 먼저 회사에 알리고는 “잘리면 어떡하지?” 싶었다. 막상 알리고 나자 “실은 나도 공황이 있었어” 하며 주위에서 하나둘 고백해왔다.
“처음 기자 생활 1~2년차 때는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이런 성격을 가지고 기자 일을 할 수 있을까, 자책도 했었는데 다른 기자들 만나보면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하더라고요. 겉으로는 다 강하고 덤덤해 보여도 같은 고민을 하는 걸 보면서 좀 더 용기 있게 얘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F코드(정신질환 질병코드)는 기자가 되고 싶은 그의 꿈도, 그의 간절한 노력도 망치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은 경증 우울 에피소드로 증상도 훨씬 가벼워졌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기자도 마음고생 할 수 있다고, 그래도 (저는) 일어서서 다시 살아가고 있다고 전해주고 싶어요. 위로하고 공감해주고 싶습니다.”
기자가 되고 3년 동안 자책을 더 많이 했던 그는 요즘 “입사 후 가장 만족도 높은” 생활을 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심리학 교수 등 취재 대상이 달라졌을 뿐, 취재하고 기사 쓰는 일은 같고 일이 더 쉬워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잘 버티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뉴스레터 독자들과 함께 아침에 일어나 의식(意識)을 비워내는 의식(儀式·ritual) 챌린지도 하고 싶고, 빨리 요가 강사 자격증을 따서 독자들과 야외 요가도 해보고 싶다. 2030 남성이 겪는 심리적 문제나 전쟁 트라우마, 청소년 자해 등 다루고 싶은 주제도 많다.
출입처에 나가는 대신 기획자로, 4년차 기자인 그는 또래 기자들과는 일찌감치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아무리 ‘덕업일치’라지만,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조금은 불안하지 않을까. 그는 선뜻 “주류의 길을 가는 건 아니지만 내 길 가련다”고 했다.
“처음 이 팀(커넥트팀)에 오고 나서 ‘나 이제 취재 못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 때 다른 부서 선배가 해준 말이 있어요. 취재하는 기자도 중요하지만 기획하는 기자의 필요성이 커지는 시기라고, 전통적인 것만이 답이 아니라고요. 저의 아이덴티티를 취재기자에 국한하지 않으려고 해요. 밖에 나가서 저를 소개할 때도 콘텐츠 크리에이터, 콘텐츠 에디터라고 할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저널리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더 사회적 이슈를 찾아보려 하고, 전통 부서에 있을 때 얻었던 취재 스킬과 방식들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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