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0일 밤, 광주MBC는 왜 불에 탔을까

[인터뷰] '미완의 오월 수첩' 연속 보도한 이다현 광주M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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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0일 밤 9시 반쯤, 광주MBC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볼펜 한 자루 남지 않고 모두 잿더미가 됐습니다.” 지난 5월20일, 광주MBC는 ‘뉴스데스크’에서 42년 전 시민들의 손에 의해 사옥이 불탄 역사를 다시 한 번 회고했다. 계엄당국의 요구에 따라 1980년 5월19일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자막을 내보냈는데, 그 이튿날 사실 보도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광주MBC에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리포트를 맡은 이다현 광주MBC 기자는 “(자막은) 사실과 명백히 다른, 허위 보도였다”며 “광주MBC 화재는 (신군부의) 압력이 있었다 하더라도 사실 보도 원칙을 저버려 시민에 응징당한, 언론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광주MBC가 자사의 왜곡 보도 역사를 끄집어낸 건 내부에 일종의 부채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며, 언젠가 이 화재 사건을 포함해 ‘5·18과 언론’을 꼭 한 번 다뤄야 한다는 공감대가 존재했다. 과거를 반성하는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5월17일부터 21일까지 연속 보도된 ‘미완의 오월 수첩’이란 기획이 탄생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광주MBC는 화재 사건을 넘어서 당시 신군부의 언론 검열과 그 검열에 반대해 제작거부를 결의한 언론인들까지 폭넓게 다뤘다.


기획은 올해 시사팀으로 옮기게 된 이다현<사진> 기자가 맡았다. 이다현 기자는 “5·18 42주년을 맞이해 어떤 얘길 해볼 수 있을까 연초부터 고민이 많았다”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려봤는데, 5·18과 언론은 한 번 꼭 짚고 넘어가야 된다는 공감대가 있어 이 주제를 준비하게 됐다. 특히 광주MBC 화재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룬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만 5·18을 경험해보지 않은 1993년생, 3년차 기자로선 5·18과 언론을 주제로 기획물을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연고도 없어 처음부터 5·18에 대해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야했다. 보도를 한 달 앞둔 4월 중순부턴 본격적으로 연락처를 수소문해 인터뷰가 가능한 전직 언론인들을 섭외해 나갔다. 5·18 관련 취재원들에게 물어물어 연락처를 받으면서 당시 활동했던 10명의 기자와 2명의 PD를 섭외할 수 있었다. 이 기자는 “만나 뵙고 싶더라도 벌써 42년이 지나 돌아가신 경우도 더러 있어 아쉬웠다”며 “총 열두분을 만났는데 한 분당 최소 40분 정도는 인터뷰했던 것 같다. 녹취록을 인쇄해보니 A4 용지로 200장은 되더라”고 말했다.


방송 분량은 이미 5편으로 최종 확정된 터라 그 많은 인터뷰를 줄이고 또 줄이는 일은 이 기자에겐 너무나 힘든 과정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도 당사자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인터뷰 문장을 넣었다 뺐다 고민하다 별도의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자, 결심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이 기자는 “제가 열심히 애정을 담아 준비해서 그런지 촬영 원본을 이대로 썩히기는 싫었다”며 “이걸 어떻게 활용해서 기록물로 남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일단 광주MBC 화재 사건을 다룬 긴 버전의 유튜브 콘텐츠를 준비했다. 유숙열 당시 합동통신 기자님 인터뷰도 유일한 여자 선배이시고, 또 여러 스토리들을 말씀해주셔서 유튜브용으로 따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남은 것도 많다. 무엇보다 어떤 기자로 살아야 할지 마음가짐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고 이 기자는 전했다. 특히 5·18 당시 광주MBC에서 근무했던 서공석 기자의 말은 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후배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은 계속 싸우면서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변을 했는데 이 말의 여운이 길게 남았다고 했다. 이 기자는 “저는 원래 다른 사람들이랑 갈등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며 “그런데 기자가 되고 보니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게 역할이더라. 역할에 충실하려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되는 순간이 많이 오는데, 선배들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저연차 기자지만 많은 걸 느낀 말이었다”고 했다.


한편으론 그 싸움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 기자는 “기사를 완성도 있게 쓰고 싶다는 의욕이 있다면 저와도 계속 싸워야 되는 것”이라며 “기자로 살아가려면 이런 긴장 상태에 익숙해져야 되는구나 생각했다. 잘 싸우는 법을 배워야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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