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보도 두려웠나… 호반, KBS 기자 재산 가압류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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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KBS 앞으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보낸 사실조회서가 도착했다. 정새배 KBS 기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집 주소를 제공해달라는 법원의 요청이었다. 법원에 정 기자의 개인정보 조회를 신청한 곳은 호반건설이다. 정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호반건설이 정 기자 개인의 재산을 가압류할 목적으로 법원을 통해 정보 제공을 요청한 것이다. 정당한 반론권 행사를 넘어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과 재산 가압류로 기자를 압박하는 호반건설의 행태에 비판이 나오고 있다.


KBS는 지난 3월30일 <공정위, 호반건설 2세 ‘일감 몰아주기 의혹’ 곧 제재> 리포트에서 호반건설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과정을 보도했다. 이 의혹을 조사해온 공정위가 내부적으로 호반에 대한 제재 방침을 결정했고, 상반기 안에 심사보고서를 낼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KBS ‘호반 일감 몰아주기 의혹’ ‘서울신문 기사 삭제 사건’ 보도 관련

다음날 공정위는 KBS 보도 내용을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내어 “호반건설의 법 위반행위에 대해 현재 심사 중이나 제재 여부나 처리 시점 등을 결정한 사실이 없다”고 설명했다. 호반건설은 곧바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보도 이틀 만인 4월1일 호반건설은 해당 기사를 쓴 정새배 기자와 KBS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1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장을 서울남부지법에 제출했다. 정 기자에게는 손해배상금에 대한 채권 가압류까지 신청했다. 호반건설은 언론중재위원회에도 정정보도와 손해배상 조정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심의 민원을 신청했다.


호반건설은 KBS 보도가 허위라고 주장한다. KBS는 “호반건설은 2008년부터 10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신도시 용지 입찰 물량 가운데 10% 가까이를 낙찰받았고 그 물량 가운데 상당수를 호반건설 김상열 전 회장의 자녀들이 최대주주인 회사에 분양가 이하로 되팔았다”고 보도했는데, ‘상당수’가 아니라 ‘일부’이며 ‘분양가 이하’가 아니라 ‘법령이 정한 가격’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또한 공정위가 설명한 대로 제재방침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도 내용이 틀렸다는 입장이다.


반면 정새배 기자는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확인한 사안”이라며 보도의 근거가 확실하다고 했다. 정 기자는 “공정위는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관행적으로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곤 한다”며 “기사가 공정위의 결론과 전혀 다르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기사를 수정하기 어렵다. (가압류까지 신청한 호반건설의 대응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언중위는 4월 중 두 차례에 걸쳐 호반건설과 KBS 간의 조정을 진행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지난 24일 방심위는 향후 공정위가 호반건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심의를 보류하기로 했다.

반론권 행사 넘어 기자 개인 압박한다는 비판… 호반 “허위보도” 주장

호반건설은 또 다른 KBS 기자에게도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호반건설 창업주이자 현재 서울신문·전자신문·EBN이 속한 서울미디어홀딩스 대표인 김상열 회장도 호반건설과 함께 소를 제기했다.


피고는 지난 4월5일 방송된 KBS <시사기획 창 -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의 제작자인 우한울 기자와 KBS다. 이 방송은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이후 호반건설을 비판한 서울신문 기사 50여편이 무더기로 삭제된 사건을 다뤘다. 당시 호반건설은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언론 자유 침해라며 이를 기각했다.


우한울 기자는 지난 25일 소장이 도착해서야 호반건설이 소송을 제기했다는 걸 알았다. 우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호반은 저희의 질문을 회피하고 맥락에 맞지 않는 답변을 했지만 모두 방송에 반영했다. 그런데도 방송 가처분 신청까지 했던 걸 보면 소송은 수순이 아니었나 싶다”며 “여전히 기사 삭제 사태에 대한 의구심이 풀리지 않았다. 소장에도 자신들의 주장이 담겨있을 뿐 저희가 사실관계를 호도했다거나 큰 실수를 했다는 내용은 없다. 이 문제를 계속 취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호반건설과 김상열 회장은 보도의 당사자로서 언중위나 소송 등 구제 수단을 활용해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액과 기자 개인에 대한 가압류 신청은 악의적으로 언론의 입을 막는 행태와 다르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언중위가 지난해 9월 발표한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언론 관련 소송에서 손해배상 청구액의 평균값은 1억700만원, 2019년은 1억3800만원이었다. 호반건설은 이를 크게 상회하는 5억원, 10억원을 청구했다. 기자를 상대로 한 가압류도 이례적이다.


언론현업단체들은 호반건설의 행태를 비판하며 서울신문·전자신문·EBN 등 3개 언론사 대주주로서의 자격을 되물었다. KBS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는 지난달 30일 공동 성명을 내고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면서 취재기자를 피고로 삼고, 취재기자의 급여에까지 가압류 신청을 하는 것은 양식을 의심하게 하는 폭압적 행태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했다.


이들 단체는 “호반건설의 대응은 KBS와 취재기자를 본보기 삼아 자사를 향한 언론들의 후속 취재를 막아보려는 ‘전략적 봉쇄 소송’의 의도가 다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호반건설은 이번 소송과 관련해 “사건이 진행 중이라 드릴 말씀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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