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물안궁. 이런 것도 기사인가요?” 윤석열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신은 구두가 2012년 결혼식 때 신었던 구두이며, 김건희 여사가 권했다는 내용의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안물안궁’.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는 뜻이다. 더 줄이면 ‘TMI’다.
‘안 궁금하다’면서 이런 기사를 클릭해 읽는 심리는 무엇일까. 이 기사는 지난 22일 해당 매체 네이버 채널에서 많이 읽은 기사 8위에 올랐다. ‘바이든이 “깨끗하다”한 尹 구두, 10년 전 웨딩슈즈였다’는 제목을 단 다른 기사 역시 이날 해당 매체에서 세 번째로 많이 읽힌 기사였다. 여지없이 이런 댓글이 달렸다. “진짜 안 궁금한데.. 별 기사가 다 뜨는구나.”
하지만 친절한 언론은 독자가 궁금해하지 않는 것도 살뜰히 챙겨서 알려준다. 이를테면 이런 기사들. ‘김건희, 바이든 만남에 또 올 화이트 의상…숨겨진 의미 있었다’, ‘김건희 일할 때 쓴 안경 알고보니…팬이 선물한 5만원대 상품’, ‘한동훈 취임식 때 맨 훈민정음 넥타이의 반전 가격’ 등등. 김건희 여사가 외출 때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고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그 가격은 얼마인지, 어디서 구매할 수 있는지와 품절 여부까지 시시콜콜 알려준다. 덕분에 우리는 김건희 여사의 퍼스널 컬러가 ‘겨울쿨톤’이란 것도 알게 됐고, 그가 입은 ‘월남치마’가 “알고보니 시즌 핫 아이템”이란 정보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한동훈 장관이 맨 훈민정음 넥타이는 “용비어천가에 담긴 ‘경천애민(하늘을 공경하고 국민을 사랑함)’ 정신”을 의미한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해석도 기사로 쓰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칠 뻔하지 않았나!
그러나 사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김 여사가 올림머리를 했든, 반 묶음 머리를 했든, TPO(시간·장소·상황)와 의상에 맞는 차림을 한 것으로 이해하면 그만이다. 거기에 ‘패션업계 관계자’ 등의 코멘트를 붙여 구구절절 기사로 설명할 필요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이런 ‘관계자’ 멘트는 기자가 나름 취재를 했다는 걸 보여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김 여사와 한 장관 등의 패션에 주목하는 다수의 기사는 팬카페와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이나 사진을 그대로 옮겨오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기사 속에서 김 여사와 한 장관은 퍼스트레이디도, 국무위원도 아닌, 가수 싸이의 신곡 가사처럼 “웬만한 연예인 뺨을 치”는 ‘셀럽’이다.
언론사들도 나름의 명분은 있을 것이다. ‘조회수 높은 거 봐라. 그만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 아니겠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회수가 관심도와 항상 비례하는 건 아니다. 알 권리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영부인이나 정치인 관련 기사를 연예인 인스타그램 보고 쓰듯 한다면, 독자도 뉴스를 오락처럼 소비하게 될 것이다. 포털에서 극히 일부의 지분을 차지하는 양질의 기사들이 얼마나 공들여 쓰였든, 한낱 가벼운 기사들로 인해 전체 언론의 평판은 계속 바닥을 향하게 될 것이다. 이미 온라인에서 기자들이 ‘기레기’를 넘어 ‘외람이’로 불리고 있다는 게 그 방증이다. (인수위원회 시절 한 기자가 윤 대통령 당선자에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특검에 대해 질문하면서 “정말 외람되오나”라고 말문을 연 것을 비꼬는 것.)
이것도 다 한때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보름여, 아직 밀월 기간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조회수 맛’을 본 언론이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 같다. 한쪽에서 한동훈 장관이 추진하는 정책을 냉정하게 분석하는 기사를 써도, 같은 정치 섹션의 다른 기사는 한 장관의 팬카페 ‘위드후니’를 인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들여 양질의 저널리즘을 지탱한다 한들,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리하여 머지않은 훗날, 우리는 이런 반응을 맞닥뜨릴지도 모를 일이다. “저널리즘의 위기? 안물안궁, 어쩔티비?”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