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논문 저자 만들어주기

[이슈 인사이드 | IT·뉴미디어] 장슬기 MBC 데이터전문기자

장슬기 MBC 데이터전문기자

“별것도 아닌 일로 난리를 친다.” “때로는 불의를 보고 참는 용기도 있어야 된다.” 2019년, MBC 탐사기획팀의 고등학생 논문 공저자 보도 이후 제가 교수님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깁니다. 500여건이 넘는 고등학생이 쓴 논문과 발표문을 분석하고 취재해 보도했는데, 그 중엔 제가 박사과정 당시 고등학생과 함께 쓴 논문도 있었습니다. 제가 당사자기도 했기에 교수님들께서 저의 안위를 걱정해하신 말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보도 1년 후, 고교생과 논문을 공저한 교수가 소속된 대학에 연구윤리위원회 처분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대부분 대학에서 ‘사생활’이라며 공개를 거부했습니다. 공개한 일부 대학을 기준으로 봤을 때, 교육부에서 문제라고 지적한 사례는 대부분은 해프닝으로 끝난 듯 했습니다. 윤리위에 회부된 교수는 교육부가 지적한 사례보다 훨씬 적었고 실제 징계까지 이어진 사례는 더 적었습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교수사회에서 교수가 교수의 잘못을 판단하는 구조가 어떤 다이나믹으로 작용했을지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의 이해를 빌리겠습니다.


2019년 당시 추가 취재 결과 교수 실적쌓기용, 외유용 가짜학회도 고교생의 입시 스펙에 이용된 것을 확인하고 보도했습니다. 한국 학생 10여명이 ‘248’이라는 암호같은 숫자가 들어간 이메일 주소로 가짜학회에 투고를 했는데, 한 입시학원의 작품이었습니다. 실제 연락이 닿은 248 메일 주소를 가진 한 학생은 뉴욕대 입학에 해당 논문을 활용했다고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장관 후보자 자녀들의 논문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판박이 같은 문제는 반복됐고,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평범한 우리들은, 지쳤습니다. 다만 이 문제는 조국, 정호영, 한동훈의 문제가 아닙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의 문제도 아닙니다.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이 사태의 근본적인 책임은 교수사회에 있습니다. 교수사회가 스스로 무너뜨린 연구윤리 말입니다.


논문에 누가 이름을 올리는지는 양심에 따르게 되어있고, 보통 연구 책임자인 교수가 결정합니다. 대부분의 대학원 연구실에선 지도교수가 전적인 권한을 갖고 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저자 선별, 저자 순서는 권력입니다. 석박사 학생에게는 이것이 가깝게는 졸업, 먹고 사는 문제,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상아탑 안의 이 작은 양심은 아무도 감시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목격해왔듯이, 일부는 이를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이용합니다. 알음알음 향유하는 이 작은 권력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평범하고 지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입니다. 제가 2년 전 만났던 교수님과 연구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관행이다’, ‘미국도 그렇게 한다’, ‘중요하지도 않은 논문일 뿐인데’, ‘목수의 딸이 목공예를 했으면 문제가 안 되지 않겠냐’, ‘그 친구는 참 똑똑했다’. 그래서 저자에 넣었다고요.


과연 열심히 한 그 친구가 기특해서 논문에 이름을 넣어도 될만큼 논문이 가벼운 걸까요? 제가 다닌 학교를 기준으로, 박사 졸업 요건이 논문 두 편입니다. 10년을 한 분야만 공부해도 이름을 걸고 논문을 펴내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부모찬스’ 논문저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3년이 넘어섭니다. 그동안, 교수사회는 반성했는지, 달라졌는지 묻습니다. 문제를 다루는 언론도 좀 더 본질을 파고 들어, 장관 후보자가 아니라 교수사회에도 외람스럽고 공손하게 물어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별것 아닌 것에 분노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분노의 원인을 모르는 일부가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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