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좀 하고 기사 써라, 기자 양반아.” 이런 댓글, 한 번쯤 안 받아본 기자가 있을까. 그래서! 기자들도 공부한다. 학사에서 석사로, 다시 박사로, ‘가방끈’을 늘리기 위한 공부만이 아니라 더 좋은 기사를, 더 잘 쓰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공부하는 기자들이 있다. 언론 관련 단체들도 기자들의 공부 모임을 적극 장려·지원하고 있고, 사내에서 기자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언론사도 있다.
삼성언론재단과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언론인들의 연구모임을 지원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매년 언론인들을 상대로 연구·학습모임 공모를 진행해 선발된 팀에게 강연료 등 소정의 비용을 지원한다. 지난달 말, 삼성언론재단과 한국기자협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모임 공모에선 심사를 거쳐 18개 팀이 선정됐다. 지난해 12개 팀보다 50%가 늘었다. 언론진흥재단의 연구모임 지원 사업인 ‘저널리즘 카페’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9개 팀이 선정됐다.
연구모임 주제는 다양하다. 한국 정치 및 한일 관계 연구부터 해양생태계를 공부하는 모임, 경제·금융 기초와 산업 트렌드, 미디어테크기업과 수익구조를 연구하는 모임 등 정치·경제·사회·문화·언어·저널리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참가자들의 연차나 연령대 역시 다양하다. 한창 현장에서 일하는 10년차 전후의 기자들이 가장 적극적인 편이지만, 수습 중인 기자부터 논설위원급 이상의 ‘시니어 언론인’, 전·현직 언론사 사장까지 제한은 없다. 이들은 규정에 따라 최소 6~7명 이상, 많게는 20명 가까이가 한 달에 한 번 이상 모여서 관련 분야 전문가 등을 초빙해 강의를 듣고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있다.
박소연 파이낸셜뉴스 기자가 참여하는 ‘흥미로운 금융 읽기 연구회’는 지난 13일 첫 모임을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부를 출입했거나 출입 중인 기자 7명이 멤버다. “기자들끼리 친분이 없는, 진짜 공부를 목적으로 한 모임”이라고 박 기자는 강조했다. 이들은 금융 공부를 자처한 이유에 대해 “금융은 아주 빠르게 변하는데 기자들이 이 속도에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기본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깊이 있고 좋은 기사를 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가진 첫 모임은 열띤 강의와 토론으로 예정된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박 기자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뭔가 선순환된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희원 세계일보 기자는 ‘차이나 연구회’를 이끌고 있다. 중국 음식을 즐기던 친목 모임이 중국의 역사·경제·문화 등을 공부하는 모임으로 확대된 지 2년째다. 종합일간지, 경제지, 통신사 등 소속도, 연차도 다양한 기자들 10여명이 모여 있다. 11년차인 김희원 기자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땐 신문 1면부터 사설까지 꼼꼼하게 봤지만, 기자가 된 후엔 자기 출입처 뉴스 따라가기 바빠서 다른 뉴스를 안 보니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원래 있던 지식마저 갉아먹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통해 출입처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하게 볼 수도 있고, 타사 기자들과 교류하는 게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가 지도하는 좋은 기사 연구모임도 있다. “좋은 기사를 잘 쓰고 싶은” 기자들이 3주에 한 번 모여 좋은 기사를 공유하고, 토론하고,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모임이 있는 주엔 각자가 추천하는 좋은 기사의 이유와 아쉬운 점, 내가 쓴다면 어떻게 쓸지 등을 정리해 먼저 과제로 제출하고, 토요일 오전에 모여 이를 주제로 토론하며 좋은 기사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팀원은 스무명 남짓. 반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토요일 모임에도 14명, 15명씩은 꼬박꼬박 참석한다.
디지털 저널리즘의 대안과 미래를 고민하는 기자들도 뭉쳤다. ‘디지털은 괜찮아, 언론사가 문제지’란 모임 이름부터 도발적이다. “지금까지 안 됐던 걸 이제는 어떻게 되게 할 수 있을까 같이 찾아보자”는 취지로 신문·방송·통신사 소속 10년차 이하 기자 9명이 모였다. 오수영 SBS Biz 기자는 “성공한 플랫폼의 비결 등 언론사에서 못한 시도인데 외부에서 잘된 케이스를 발굴해서 교훈을 얻고 언론사에 적용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 시작했다”며 “같이 고민하고 공부한 결과물을 책으로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 코리아타임스 기자가 이 모임 제안에 응한 것도 마침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서였다. 박 기자는 “언론사는 톱다운 식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독자들이 좋은 기사를 알아서 찾아와야 한다는 마인드가 강한데, 젊은 기자들은 모바일이나 컴퓨터 네이티브인 세대이기도 하고 소비자로서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그런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일하는 방식과 콘텐츠를 개선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며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다양한 매체의 기자들을 만나서 공부하면 다른 회사 사정도 알 수 있고 정보 교류도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소속 기자 등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있다. 재교육 이상의 ‘투자’ 의미에 방점이 있다. 한겨레는 올해 미디어전략실 차원에서 데이터 교육 강화를 주요 과제로 삼고 사내 아카데미 형식의 연중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지난 3월 기본 엑셀반을 시작으로 4월부턴 파이썬 프로그래밍 교육에 들어갔다. 온-오프라인 동시 교육으로 진행되는데 매회 기자 포함 다양한 직군에서 20명 이상이 참여한다. 12주짜리 교육이 끝나면 심화 과정도 진행할 예정이다. 최우성 미디어전략실장은 “그동안 회사가 교육훈련비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아서 전향적으로 예산도 집행하고 프로그램을 짜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도 보도 전문성 강화를 위한 사내 아카데미 ‘윙스101클래스’를 편집국에 개설해 지난 3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첫 시즌은 경제·산업을 주제로 주 1회 총 11회 분량 강의로 구성됐다. 동아일보와 채널A 기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수강 중인데 4월 말까지 진행된 6번의 강의에 대해 83%의 수강생들이 “(매우)도움됐다”고 평했다. 전문가 강사와 3개월간의 장기 심화교육인 점 등이 만족도가 높았다. 동아일보 관계자는 “‘윙스101클래스’가 1회성이 아닌,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실질적 프로그램이 되도록 앞으로 꾸준히 수강자 커리어 플랜을 관리할 계획”이라며 “향후 (관련) 부서 배치에 본인(수강자)의 의사를 반영하도록 노력하고, 수강자들이 향후 전문성을 갖춘 인플루언서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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