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128년 전 조직된 '국내 최초' 국악단체

[제379회 이달의 기자상] 손도언 중도일보 지방부 기자 / 지역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손도언 중도일보 지방부 기자

지난해 11월 중순. 한 취재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국악단체가 제천시에 존재했다’는 얘기를 해줬다. 그의 주장은 쉽게 와 닿지 않았다. 일단 제천시는 국악의 고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석탄과 시멘트, 잿빛도시 등의 부정적인, 즉 삭막하고 딱딱한 도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이런 도시에서 국악단체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여부, 즉 ‘확인’은 해야 했다. 제천시청 문화예술과로 달려 갔다. 그러나 문화예술과 직원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제천 시민들은 이 내용에 대해 몰랐다.


제천지역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적은 없을까. 그런데, 서적은 존재했다. 바로 1969년 제천군지 편찬위원회가 편찬한 ‘제천군지’다. 며칠 동안 한자사전을 찾아가면서 내용을 파악했지만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결국 한문학자에게 의뢰했다. 의뢰결과 취재원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국악단체가 제천지역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그것도 ‘우리나라 최초의 국악단체 청풍승평계였다’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망치로 크게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제천 국악단체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제천 국악단체가 존재했던 지역은 ‘내륙의 바다인 청풍호’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인해 청풍호는 수몰됐고, 수몰지역이 제천 국악단체 청풍승평계 창단 장소이자, 근거지였다. 기록만 있을 뿐 국악 악기 등도 모두 물속에 잠겼다. 제천시 청풍호반을 매일 찾다시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작정 운전대를 청풍호로 돌렸다. 청풍호 인근 지역민을 만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종일, 물속만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낯선 인물이 알려준 이름 석 자 ‘이금복’. 이금복은 청풍승평계 단원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이금복은 사망하고 없었다. 이금복의 후손을 찾아야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석 달 만에 청풍승평계 4대 후손인 이금복씨 딸을 만나 인터뷰했다. 그는 “청풍지역에서 국악단체가 실제로 존재했고 증조할아버지에게 실제로 들었고 가야금과 거문고, 대금 등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의 제적등본을 입수해 제천군지의 기록과 대조했는데, 100% 일치했다. 모든 게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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