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공영방송 거버넌스라 불리는 지배구조를 개혁하고 소위 가짜뉴스라 불리는 허위정보를 규제하며 포털사이트의 알고리즘 추천을 제한하는 등의 주요 방안들이 추진 중이다. 중요한 개혁임이 분명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중에서도 소위 ‘독일식’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으로 불리는 운영위원회 구성이 특히 그렇다.
독일식 공영방송 지배구조는 대표이사와 방송위원회, 운영위원회 등 세 가지 조직으로 구성된다. 먼저 대표이사는 공영방송사를 대표함에도 방송위원회와 운영위원회의 감독과 승인을 거쳐야만 방송운영과 관련한 중요사안을 결정할 수 있는, 제한적 권한을 가진 직책이다. 방송위원회는 사회단체들의 대표나 대리인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공영방송사의 채널 운영이나 사업에 대해서 감독하고, 운영상의 주요 안건을 토론하며 승인하는 단체다. 마지막으로 운영위원회는 대표이사가 제안하는 경영 관련 주요 사안을 결정하고 채택하는 단체로서 대표이사 감독을 주요 임무로 한다.
방송위원회는 그 조직구성의 특성으로 인해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공영방송의 사회적 성격과 의미를 확인할 때마다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그중 1967년의 판결이 대표적인데, 공영방송에 존재하는 방송위원회가 사회를 대변하고 주요 의사결정에 관여하므로 공영방송은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비영리단체로 정의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1981년과 1986년, 1987년의 판결 등에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방송위원회가 보장하는 다양성을 근거로 들어 공영방송이 기본서비스로서 사회적 역할을 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방송위원회가 정치적으로 항상 독립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2012년 ‘CDU-미디어사건’과 같이 방송사의 운영에 정치권이 개입하려는 시도가 늘 있었다. 이후 독일에선 2014년의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즉 방송위원회(당시 판결 대상은 ZDF-텔레비전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조직에 정치계 출신 인사가 진입할 수 있는 비율을 전체의 1/3 이하로 제한한 것이다.
독일의 공영방송 지배구조엔 특징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표이사의 권한이 적다는 점이다. 대표이사는 방송위원회와 운영위원회의 감독을 받고 또 승인을 거쳐야만 주요 사안을 시행할 수 있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극히 제한적이다. 둘째, 공영방송 운영에 시민사회의 참여가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공영방송사들의 규모에 따라 방송위원회나 운영위원회의 구성원 수와 위원들 출신 사회단체들의 특징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사회단체들에서 선출되고 조직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단체에 많은 권한을 주지 않고 방송위원회와 운영위원회가 서로 감독하는 방식으로 공영방송사 운영의 주요사안을 결정하고 토론한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독일 공영방송의 내부구조를 살펴보면 현재 국내의 공영방송 개혁은 그중 일부만 차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결정 단계에서 하나의 단체를 조직함으로써 조직 내 결정구조를 다원화하겠다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 단체의 권한을 감독하는 단체가 부재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사실, 독일에서 공영방송은 ‘일반 대중의 것’(제2차 방송판결, 1967년)으로 정의되는데 이번 개혁에서 그 내용이 고려되었는지도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유에서 국내의 공영방송 개혁은 ‘독일식’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한국식’이라고 일컫는 편이 더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영방송 개혁은 그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미완의 과제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고, 개혁을 해석하는 방식이나 입장 또한 수없이 다양하다. 여러 방안 중에서 드디어 우리나라도 공영방송 개혁을 위한 시발점이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공영방송의 필요성에 동의하며 그 개혁을 지지하고 다원화된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견해를 갖고 있기에 이번 개혁을 시작으로 공영방송의 긍정적인 변화가 이끌어지길 기대해본다.
장성준 라이프치히대 커뮤니케이션학 박사과정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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