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이 지났다.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국내 언론은 현지에 취재진을 급파해 전쟁 상황을 취재해왔다. 하지만 한동안은 우크라이나에 접근할 수 없었다. 앞서 지난 2월13일 우리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몇 주가 지나서야 외교부가 취재 목적의 ‘예외적 여권사용’을 허가하기로 했고, 지난달 18일부터 ‘하루 4명 이내, 방문 기간 3일 이내’로 입국이 허가됐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서도 기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서남부의 체르니우치주(州) 뿐이었다. 수도 키이우에선 500km 넘게, 세계 각국의 임시 대사관이 개설된 서부 도시 르비우(리비우)와도 200km 넘게 떨어진 곳이었다. 한국 임시 대사관이 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었지만, 동부 지역의 전선과는 멀어도 너무 멀었고, 따라서 전쟁의 참상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들었다.
물론 체르니우치에서도 하루 몇 차례나 공습경보가 울리고 지하 대피소 등으로 몸을 피해야 할 정도로 전쟁의 공포는 일상화돼 있다. 그러나 기자들은 전쟁의 공포가 아닌 진실을 알리기 위해 취재한다. 그 과정에서 위험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이를 감수할 자유와 책임이 언론에 있다. 언론의 자유는 안전한 상황에서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한 지역일수록 정보가 제한되고 통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실을 대신해서 전할 책무가 언론에 있다.
MBC ‘PD수첩’은 지난 19일 ‘전쟁의 진실-인사이드 우크라이나’편을 방송했다. 기존 뉴스에서 보기 힘들었던 끔찍한 참황과 인터뷰가 50분 가까이 화면을 채웠다. 현지 영상 대부분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우크라이나 취재진 9인’이 촬영한 것이었다. 방송 중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에서 미국의 ABC뉴스 기자가 방탄조끼를 입은 채 리포트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군 퇴각 후 민간인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된 이곳에서 해외 언론 여럿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장면도 있었다. 이 방송을 제작한 분쟁지역 전문 김영미 PD도 현지 취재를 했지만,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폴란드 바르샤바까지였다.
참다못한 유럽 특파원들이 지난 15일 “다른 나라 특파원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비교해 창피할 수준”이라며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고 성명을 냈다. 그러자 외교부가 지난 25일 기존 체르니우치에 르비우, 자까르파티야, 이바노프랑키비츠까지 서부의 네 개 주로 지역을 확대하고 방문 기간과 인원도 5일, 6명 이내로 늘리는 방침을 내놨다. 그러나 유원중 KBS 파리 특파원은 “실제로 달라진 건 없다”며 “전장과는 1000km 전후 떨어진 그야말로 ‘너무 먼 당신’”이라고 했다.
얼마 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키이우 시내를 활보하고,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도 잇따라 키이우를 찾았다. 잠정 폐쇄됐던 유럽 국가의 대사관들도 속속 키이우에 다시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기자들은 우크라이나에 가도 여전히 동부 전선에서 최소 1000km, 키이우로부터도 500km 이상 떨어진 서부 지역에서만 취재해야 한다.
외교부가 내세운 ‘자국민 보호’ 원칙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5일은 되고 1주일이나 보름은 안 되는 이유가 뭔지 납득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행정편의적”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21일 논평을 내고 “정부는 이제라도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와 관련해 언론취재진들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면서 “취재진들의 안전을 지키면서도 취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제가 아닌 소통을 통해 정부가 국민(취재진)의 안전과 언론의 자유를 함께 보호할 방법을 찾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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