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생소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는 1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성스러운 기간이 있다. 바로 라마단(Ramadan)이다. 올해의 경우 4월2일부터 5월1일까지 30일간 라마단(Ramadan) 기간이다. 라마단은 이슬람 달력상의 9번째 달로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코란의 첫 구절을 받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스러운 시기인 만큼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은 라마단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않는다. 금식을 통해 인내하며 과거에 했던 잘못에 대해 속죄하고, 소외되고 굶주린 이들을 돌아본다.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침도 삼키지 않는다고 한다.
라마단은 모든 이슬람 국가들이 지켜야 하는 의무다. 국가마다 권위 있는 종교 기관이 새로운 달로 바뀌기 전날 초승달을 관측한 뒤 라마단의 첫날을 각자 발표하기 때문에 시작일이 하루 정도 차이 날 수 있지만 대체로 수니파는 사우디를, 시아파는 이란의 발표를 따른다.
라마단은 중동지방의 전쟁도 멈추게 한다. 예멘 내전에서는 사우디 주도 아랍 동맹군과 반군 후티가 라마단 시작과 함께 2개월간 휴전에 합의했다. 휴전과 함께 예멘의 주요 항구도시인 호데이다를 통한 연료 수입과 수도 사나 공항의 여객기 운항도 재개됐다. 비행기 조종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중동항공사에서 근무하는 필자의 특성상 비행을 하다 보면 옆에 앉은 기장이 무슬림인 경우가 많은데 라마단 기간엔 일몰 때까지 물도 마시지 않아 약간 눈치가 보이곤 한다. 물론 기장은 “신경쓰지마~ 너 마시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해”라면서 안심시키지만, 어쩌나. 내가 남 눈치 많이 보는 전형적인 한국인인 것을.
라마단 기간 때는 평소 하는 항공기 조종 일 외에 하나의 임무가 더 부여되는데, 바로 정확한 일몰 시간이 언제인지 알아내서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해주는 역할이다. 다들 목이 빠지게 기다리면서 오늘의 라마단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다들 고생하셨어요.” 기장 혹은 사무장이 기내방송으로 승객들에게 안내하고 나면 비행기 안은 작은 축제 분위기로 바뀐다. 중동 특산물인 다디단 대추야자를 오물오물 씹고, 하루 내내 못 마셨던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음식도 마음껏 흡입하면서 그날 고생했던 자신을 치하한다. 이렇게 낮 동안 금식을 한 이슬람교도들은 해가 지면 가족과 친척, 소외된 이웃 모두 함께 푸짐한 식사를 즐긴다. 이를 ‘이프타(Iftar)’라고 하는데 ‘금식을 깬다’라는 의미가 있으며, 긴 단식 후 충분한 영양 공급을 위해 쌀과 구운 고기를 주 식단으로 모자랐던 영양분을 채운다.
때문에 라마단 기간 때는 저녁 이프타 뷔페를 찾아가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많은 레스토랑들이 푸짐한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기에 비무슬림에게 있어서도 라마단은 즐길만한 요소가 있는 행사다. 보통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내외면 평소에 비싸서 가지 못했던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즐길 수 있으니 가격도 나쁘지 않다.
최근 라마단 풍경이 예전과 비교해 달라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라마단 기간이면 레스토랑들이 낮에는 커다란 커튼을 쳐서 내부를 안 보이게 해놓고 영업했는데 작년인가부터 아무 규제 없이 문을 활짝 열고 영업을 개시했다. 워낙 규제가 까다롭다 보니 많은 식당들이 아예 문을 닫아 현지 언론이 라마단 기간 중 이용 가능한 식당을 소개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지만 이젠 ‘라떼는 말이야~’식의 옛날 얘기가 됐다.
국제적인 관광도시인 두바이는 여행자들을 위해 라마단 기간에도 관광명소와 레스토랑, 가게를 평소처럼 운영한다. 일몰 뒤 가족, 친구들과 이프타를 즐길 수 있도록 쇼핑몰과 레스토랑의 영업시간을 자정 이후로 연장하는 등 도시의 밤은 라마단 기간에 더욱 길어지고 깊어진다.
세상은 변한다. 정말 보수적이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이슬람 사회도 이런 식으로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무슬림이 가장 중요시하는 의식 중 하나인 라마단을 계기로 이곳 중동 지역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전쟁의 공포 등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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