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없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배우 윤여정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코다’의 농아인 배우 코처를 호명하며 수어로 축하하고, 코처가 수어로 소감을 밝힐 수 있게 트로피를 대신 받아들고 배려한 모습이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도 두 손을 반짝이는 수어 박수를 보내며 감동을 끌어냈다. 그즈음 국내에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거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며 장애인들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고 쏘아붙이자,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장애인의 날’을 맞는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겠다는 대통령은 없었다”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의 말처럼, 21년째 투쟁하고 있는데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 확대가 더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는 분명하다.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장애인의 날만 반짝 관심을 갖고, 정치인의 혐오 발언을 부각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관행이 어쩌면 21년을 싸워야 했던 이유인지 모른다. 장애인 10명 중 7명이 한 달에 다섯 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통계는 최소한의 권리인 이동권 보장이 그들에게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 말해준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누군가는 오랜 시간 읍소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 현실은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미국 장애운동의 ‘대모’인 주디스 휴먼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연대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의 장애인뿐 아닌 언제, 어디선가 발생할지 모르는 ‘내일의 장애인’을 위해서도 중요한 활동임을 대중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차기 정부에 제안한 핵심 인권과제를 설명하며 첫 번째 과제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과 혐오표현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공식 선언을 주문했다. 여성과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을 향한 혐오표현이 갈수록 심각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진단에서 나온 목소리였다. 그런데 정치인들의 장애인 차별적 발언을 보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넘어야 할 높은 벽을 실감한다. ‘외눈박이’ ‘정신분열적’ ‘절름발이’ 같은 발언이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언론은 자유로울까. 박영흠 협성대 교수는 한겨레21에 기고한 글에서 “포퓰리즘 시대에 언론이 ‘사실의 속기사’가 돼선 안 된다”고 충고했다. 정치인의 말을 아무런 판단 없이 받아쓰기만 해서는 안 되고, 발언의 사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적극적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언론에게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가려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일침이다. 일부 언론이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싸고 진행되어온 맥락을 심층보도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때로 ‘시민불복종’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를 이루는 방도가 된다고 했다. “사회가 동등한 사람들 간의 협동체제로 해석되는 경우에는, 심각한 부정의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복종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도화선이 된 ‘로자 파크스’ 사건은 이런 시민불복종의 대표적 사례다.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요구에 맞서 파크스가 저항한 것을 계기로 흑인들의 버스탑승 거부가 1년 넘게 지속되며 인종분리정책에 맞섰다. 결국 법원은 버스 안 인종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시민으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인 이동권 요구 목소리를 장애인 배제 정치로 혐오와 차별로 맞대응하는 정치는 이제 끝나야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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