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 식 내각 인선 오보들

인사검증 속보·단독 경쟁의 이면

  • 페이스북
  • 트위치

윤석열 정부를 이끌 1기 내각 인선이 마무리되면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검증의 막이 올랐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이달 말부터지만, 언론의 검증은 이미 시작됐다. 인사검증에 뛰어든 언론의 속보·단독 보도 경쟁도 치열하게 전개 중이다.


<한덕수, 공직 쉴 때 재산 40억→80억 불렸다> <정호영, 농지 대리 경작 의혹‥정 후보자 “일부 논 팔겠다”> <이창양 산업 장관 후보, ‘거수기 사외이사’ 13년간 8억 받았다> <“학교 주인은 총장” “가만있어!”… 김인철 후보 과거 ‘어록’ 논란> <정호영 논문 공저자들, 딸 의대 편입 구술평가 만점 줘>. 지난 며칠간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인사검증 보도의 ‘일부’다. 지난 3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과 10,13일 두 차례에 걸친 내각 인선 발표 이후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언론을 통해 그야말로 쏟아지고 있다. 특히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녀들의 의대 편입, 병역 특혜 의혹이 연일 불거지며 ‘제2의 조국’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정 후보자의 경우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인사검증동의서를 내고 바로 다음 날 장관 후보자에 지명 발표돼 ‘하루 검증’을 거친 사실이 역시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기도 했다. 언론이 총리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검증뿐 아니라 인수위의 인사검증을 검증하는 역할 또한 하는 셈이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제대로 사실 검증을 거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게 인선(人選) 보도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풍문만으로 기사를 쓰고, 틀려도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4일 1면 머리기사로 ‘새정부 총리에 김부겸 유임 검토’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김 총리가 유임된다면 코로나가 어느 정도 안정 단계에 접어드는 것을 전제로 연말까지 6~7개월 재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했다. 보도 당일 윤석열 당선자 측과 총리실 양쪽 모두 부인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으나, 파장은 길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10일과 13일 18개 정부 부처 장관 후보자 인사를 발표했다. 앞서 언론 보도를 통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됐으나 최종 명단에 들지 않은 인사들이 여럿이다. /뉴시스


주목할 것은 해당 기사에서 확인되는 총리 유임설의 근거는 “국민의힘 인사”, 즉 익명의 취재원 한 명의 발언뿐이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익명 취재원의 주장이나 풍문을 근거로 특정 인사의 내정·유력설을 ‘단독’이라며 보도하는 예도 허다했다. <尹정부 ‘여가부 장관’에 김영미·황옥경 교수 유력 검토> <이태규·나경원 입각 확정...경제부총리 등 일요일 발표> <새정부 첫 중기부장관에 이언주 전 의원 거론> <윤석열 대통령 비서실장에 장성민 특보 유력>. 모두 ‘단독’을 내걸고 보도됐으나, 결론적으로 오보가 된 기사들이다. 이런 기사는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정치권과 인수위 주변 핵심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사자 확인을 하지 않거나 부인해도 ‘일단 들으면 쓰는’ 분위기도 있다. 언론은 언론대로 기사 경쟁을 하고, 정치권 등에선 특정 인사의 이름을 흘려 민심을 떠보는 여론몰이 목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대통령실 홍보수석에 특정 인사가 거론된다는 중앙일보 보도 등이 한 예다. 몇몇 언론도 비슷한 보도를 했는데, 이런 기사의 문장은 대체로 ‘거론된다’, ‘파다하다’, ‘(말이) 흘러나온다’ 등으로 끝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 출범 전후 조각이나 개각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보도 행태는 언론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 내몰려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편으로 정부 인선은 언론 스스로가 취재 인맥과 역량을 과시하는 장이기도 하다. 인선 발표를 단 10여분 혹은 몇 시간 앞두고 단독이라며 ‘시간차 특종’ 경쟁을 하는 게 독자들에겐 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언론사 혹은 기자들 사이에선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포털에서 조회수를 두고 벌어지는 ‘소리 없는 전쟁’은 더 하다. 이 과정에서 침소봉대 식의 무리한 보도가 나오기도 한다. 뉴스1의 <복지장관 후보 “불임·성기능 저하는 ‘노트북’ 때문…궁금하면 기자들 봐야”> 같은 기사가 한 예다. 네이버 댓글란엔 오히려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논란을 만들어 내는’ 기사를 나무라는 의견이 많다. ‘커뮤니티발 보도’ 역시 빠지지 않는다. <“모델 포스·비주얼 깡패”…한동훈 향해 쏟아지는 관심>, <“한동훈 안경 어디 거?” “모델 포스” 남다른 패션 또 화제> 같은 기사들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소개한 해당 기사들은 패션 전문 커뮤니티 ‘디젤매니아’, 한 후보자의 팬클럽 ‘위드후니’ 등을 인용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