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남대문시장에서 손정애씨를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납니다. 칼국수 한 그릇과 덤으로 주신 비빔냉면을 맛있게 먹으며 70대 현역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손정애씨 삶의 기록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일했으나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의 아내나 엄마로 불린 사람들, 집안일부터 바깥일까지 쉼 없이 해냈지만 ‘집사람’으로만 소개된 사람들, 오늘도 묵묵히 사회 곳곳에서 필수노동을 책임지고 있지만 정확한 직함 대신 ‘아줌마’나 ‘할머니’, ‘이모님’으로 불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젠더기획’이라는 문패를 달았습니다, 젠더문제를 얘기할 때조차 노인 여성들은 소외되고 노인문제의 일부로만 다뤄지는 것이 속상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할 땐 “내가 뭐 한 게 있다고?”라고 했지만, 끝날 때쯤엔 자신의 노동에 뿌듯해 한 분들과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낯선 이들에게 인생을 들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젠더기획팀은 경향신문의 다양한 직역이 모인 조각보팀입니다. 아픈 어머니의 노동을 기억하며 용기 내 기획에 지원한 교열기자와 ‘신문기사’로만 머물뻔한 기획을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로로 확장시킨 여성서사아카이브 ‘플랫’, 꼼꼼한 데이터분석을 통해 취재원들의 이야기가 개인의 사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세대와 사회구조의 이야기라는 것을 보여준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글이 담아내지 못한 삶의 장면들을 정확한 시선으로 담아낸 사진기자, (저희끼리는 넷플릭스급이라 자부하는) 영상으로 멋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낸 PD, 전국 곳곳을 다니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길어 올린 취재기자 등. 최고의 팀원들과 함께 행복한 노동을 경험했습니다.
무모해 보일 수 있는 젠더기획팀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지해준 경향신문의 여러 동료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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