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오미크론과의 전쟁'서 승리할 수 있을까

[글로벌 리포트 | 중국] 유지영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

유지영 서울신문 베이징특파원

2020년 9월 중국에서 특파원 생활을 시작하려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베이징으로 가는 직항편을 구할 수 없어 일단 쓰촨성 청두에서 2주 격리를 마친 뒤 상경하기로 했다. 호텔방에 갇혀 수도 없이 코로나19 관련 검사를 받았다. 호텔 직원이 층마다 입국 격리자를 지키고 서 있어 문밖으로 나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열흘 넘게 방 안에 혼자 있다보니 심리적 고립감이 상당했다. 같은 층에 있던 중국인 여성은 “계속 가둬두면 창밖으로 뛰어 내리겠다”고 소동을 피웠다. 격리를 마치고 청두를 떠날 때의 기분은 20여년 전 병역 의무를 끝내고 자대(自隊)에서 나올 때와 똑같았다. 이런 식의 구속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바랐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국에 정착해 특파원 임기(3년)의 절반을 소화했다. 지난달 5일 가족과 함께 베이징 북쪽 순이(順義)구에 있는 창고형 할인매장에 갔다가 닷새 뒤 파출소 전화를 받았다. 감염병 확진자로 판명된 주민이 같은 날 해당 매장을 찾았다는 것이다. 기자를 포함해 이동통신사 기지국에 동선이 잡힌 스마트폰 사용자 수천 명이 2주간 관찰 대상이 됐다. 1년 6개월 만에 두 번째 격리가 시작됐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됐고, 현관에 센서가 부착돼 하루 다섯 번까지만 문을 열 수 있게 했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다섯 번’의 기회를 활용해 외출할 수 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 ‘통행증’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젠캉바오(健康寶)가 ‘비정상’ 상태로 바뀌어 있어 동네 편의점조차 쉽게 들어갈 수 없다. 또 한 번의 격리 소동을 겪은 기자는 이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않는다. 베이징 맛집이나 명소도 찾지 않는다. 언제라도 경찰이 전화해 “격리에 들어가라”고 할까봐 겁이 나서다.


이것이 ‘제로 코로나’로 불리는 중국의 ‘동타이칭링’(動態淸零) 정책이다. 어느 동네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나 일하는 직장, 장을 본 슈퍼마켓 등을 전부 봉쇄하고 주민들을 가둔다. 이후 2~3주간 핵산 검사를 반복해 추가 감염자를 찾아낸다. 확진자가 속출해 정밀 동선 추적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2020년 초 후베이성 우한이나 지금의 상하이처럼 도시 전체에 통행금지령을 선포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인권침해 논란이 불거지겠지만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시하는 중국에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국 등 서구세계에서 이를 냉소적으로 보지만 최소한 중국 내부에서는 “사회주의 체제가 팬데믹 위기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점을 입증했다”는 선전이 꽤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중국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차단했고 경제 충격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덜했다. 덕분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인기도 치솟았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인 상당수는 시 주석의 최고 치적으로 코로나19 방역 성과를 꼽는다.


그런데 이러한 ‘제로 코로나’ 신화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철통같이 ‘방역 만리장성’을 쌓았지만 오미크론 변이까지 막진 못하고 있다. 그간 중국 당국은 “시 주석이 제로 코로나 원칙을 제시해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만들 수 있었다”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인들도 하나둘 깨닫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우리만 봉쇄와 격리를 되풀이하며 세계와 차단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문제는 의료 체계가 열악한 중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위드 코로나’를 시작하면 한동안 오미크론 감염자·사망자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 주석의 최대 업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베이징 지도부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베이징의 한 중국 전문가는 최근 고위 당국자에게 “(모든 변이에 효과가 있는) 화이자·모더나같은 mRNA 백신을 국산화해 주민 접종을 완료하는 2024년 봄이 돼야 ‘위드 코로나’로 전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감염병을 통제한 중국이 아이러니하게도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 바이러스 사태를 마무리할 것으로 점쳐진다.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구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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