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위기’와 ‘대학 언론의 위기’는 어쩌면 같은 말일지 모른다. 2000년대 이후 대학은 취업이라는 절체절명의 목표 달성을 위한 준비기관이 되어버렸고, 입학과 동시에 ‘조기 취준생’ 또는 ‘공시생’의 길을 택하는 까닭에 학생회나 동아리 같은 단체 활동도 학점과 ‘스펙’ 관리에 밀려났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대학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캠퍼스 생활 자체를 지워버렸다. 2년 이상 진행된 비대면 수업의 여파로 대학이라는 공동체, 캠퍼스 소식에 대한 ‘학우’들의 관심은 자연 감소했고, 대학 언론의 문을 두드리는 신입생의 수도 줄고 있다.
이쯤이면 거의 고사 직전인 것 같은데 시사IN이 진행한 대학기자상에 ‘무려’ 288편의 응모작이 접수됐다는 소식에 솔깃해졌다. 3차에 걸친 심사로 선정된 6편의 수상작을 보면서 더 그랬다. 3년째 심사에 참여했다는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도 “올해 출품작 수준이 높아져 상당히 놀랐다”고 했단다. 2010년 제정돼 올해로 13회째를 맞은 시사IN 대학기자상은 ‘대학 매체에 이미 보도된’ 기사를 출품 대상으로 한정한다. 공모전에 맞춰 생산된 기사가 아니란 뜻이다. 288편이란 응모작 수는 제2회(340여편) 때 다음으로 많고, 100편 전후에 머물렀던 제10·11회 때보다는 2배 이상 많다. 대학 언론, 아직 희망을 걸어도 좋은 것일까. 수상자들에게 물었다.
고사 직전인 지역 대학들 현실 조명
지난해 봄, 부산의 동아대학보와 부경대신문 기자 5명은 ‘부산공동취재단’을 꾸려 눈앞에 현실로 닥친 지역 대학의 위기 실태를 연속 기획으로 보도했다. 이들은 ‘각자도생’의 길만 남은 대학 언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다른 학교와의 협업”을 성사시켰다. 지역 대학의 위기가 지역의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 지역 대학을 고사시키는 대학기본역량진단 제도의 허점 등을 4개월간 취재해 촘촘히 파헤친 보도도 물론 호평을 받았지만, 지역 대학에선 특히 유례가 없는 연대와 협업을 시도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며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학언론인네트워크 부산지역위원회(부산대언넷) 위원장이기도 한 박주현(19학번) 동아대학보 기자는 “수상 그 자체보다 연대를 함으로써 수상을 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며 “축하 이상으로 이런 시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민자 기숙사’ 구조적 문제 분석도
서강학보의 주현우(16학번) 기자는 2007년 서강대학교가 민자사업으로 건설한 기숙사 이용료가 왜 인근 지역 평균 월세와 비슷할 정도로 비싼지, 수익형 민자사업(BTO)의 구조적 문제를 파헤쳐 분석한 기사로 취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기사 마감을 사나흘 앞두고 뒤늦게 ‘질문에 답할 수 없다’는 학교 측 회신에도 포기하지 않고 “우회적인 취재”로 퍼즐을 맞춰 나간 결과였다. “대학 언론 기자가 감당하기에는 고난도의 취재”라는 심사위원 평가도 있었다. 주 기자는 많은 대학에서 총학생회가 구성되지 않을 정도로 학생 여론을 모을 구심점이 없어졌다고 지적하며 “대학 언론은 학생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했다.
성실한 취재가 빛낸 학내 청소 노동자 문제
중앙대학교 방송국 UBS는 학내 청소 노동자 처우를 심층 취재한 기획 영상 ‘비정규직의 내일’로 방송·영상 부문을 수상했다. 아이템이 “식상하다”는 일부 지적에도 불구하고 수상작으로 선정된 비결엔 “꼼꼼하고 성실한 취재”가 있었다.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를 만나 설득하고, 용역업체와 학교를 찾아가 기획 의도를 설명하고 휴게소 촬영 허락을 받는 지난한 과정에 이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7명의 기자가 2개월 동안 취재하고 촬영하고 편집까지 모든 걸 “합심해서” 만들었다. 정유진(19학번) 기자는 “코로나19가 터지며 비대면이 되고 학우들이 교내 사안에 관심을 안 가지다 보니 홍보를 저희가 할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 학교 학우들뿐 아니라 더 많은 대학생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라 생각해서 대학기자상에 응모하게 됐다”고 말했다.
‘용호상박’ 뉴커런츠 부문 공동 수상
새로운 시도를 격려하기 위해 지난해 제정된 뉴커런츠상은 두 편의 수상작을 냈다. 데이터 저널리즘 기법을 통해 ‘윤창호법’의 실효성을 따진 광운대신문과 공영장례 제도의 허점을 들여다본 연세대학교의 포브(POB). 광운대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KDT)은 경찰청,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시스템을 뒤져 확보한 음주운전 사고 관련 데이터 9만1622개를 분석해 음주운전 처벌 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밝혀냈고, 이를 완성도 높은 인터랙티브 페이지로 제작했다. 얼마 전 졸업한 김동찬(15학번) 기자는 “후배들에게 듣기로 (광운대신문은) 이번 기수에 한 명 밖에 안 들어왔다고 하더라. 거의 존폐 위기가 있고 전반적으로 많은 학보사가 그런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좋은 상을 받게 되니 ‘하면 되는구나’ 싶다”고 말했다.
사진 동아리에서 출발한 연세대 포브는 학보사도, 방송국도 아니다. 프로젝트마다 뜻맞는 이들이 멤버로 합류하는 “느슨한 조직”이다. 이번 수상작인 공영장례 기획은 남궁현(17학번)씨가 팀장을 맡았다. 남궁현 팀장은 포브의 전작인 ‘유령집회’ 기획에도 참여했다. 집회 신고는 됐으나 실제로 열리지 않은 집회 관련 데이터 분석을 통해 집회신고제도의 허점을 파헤친 유령집회는 2020 한국 데이터저널리즘 어워드 ‘올해의 영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번 공영장례 기획을 하며 무연고 사망자 데이터를 분석하던 포브는 “그분들의 죽음과 이야기를 숫자로만 표현하기엔 한계가 많겠다”고 판단했다. 남궁 팀장은 공영장례 지원 상담센터인 나눔과나눔에 이메일을 보내 3개월간 자원 활동을 했다. 무연고 사망자들 장례식에서 대리 상주를 맡아 조사를 낭독하기도 하고, 관을 운구하고, 장례 지도사를 도우며 경험한 현장 이야기를 기사에 녹여냈다. 이처럼 “학보사나 기성 언론이 다루기 힘든 주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는 게 포브의 기본적 방향성이다.
또한, 이는 대학 언론의 ‘뉴 커런츠(New Currents)’이기도 하다. 학보사에서 윤창호법을 다룬 이유를 묻자 김동찬 기자는 “코로나19 때문에 전처럼 학교 소식을 자주 접하지 못하다 보니까 교내 소식에 학우들의 관심이 많이 없단 걸 알게 됐고, 대학 언론의 첫째 임무는 역시 교내 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윤창호 씨가 대학생이기도 했고”라고 말했다. 이례적으로 4학년 1학기에 학보사에 들어간 김동찬(15학번) 기자는 직접 데이터저널리즘팀을 꾸려 서울시의 여성 안심 귀가 서비스 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한 기사를 지난해 6월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하기도 했다. 지금은 졸업하고 언론사 공채를 준비 중인 그는 “스트레이트 기사도 좋지만 탐사보도나 기획취재를 통해서 이면을 드러내는 것이 정말 기자로서 해야 할 첫째 책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기자를 꿈꾸는 대학 기자들
현재 4학년인 주현우 기자도 탐사보도 기자를 꿈꾼다. 주 기자는 대학기자상 수상 이후 모처로부터 취재 요청을 받고 이미 기사 작성까지 마쳤다. 지난달 학보사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그는 기자다. 그는 “탐사보도 형식의 기사처럼 정보의 비대칭 같은 걸 해소할 수 있는 기사를 쓰고 싶다”며 “다양한 능력과 기지를 발휘해서 공익을 위해 진실을 알릴 수 있는 기자가 되겠다”고 밝혔다.
박주현 기자와 정유진 기자도 졸업 후 진로로 기자를 희망한다. 하지만 정 기자는 “지금은 제가 너무 많이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3학년을 마치고 휴학 중인 그는 지금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뉴스와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자본의 논리에 지배되지 않는 정의로운 언론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박주현 기자는 지난해 편집국장 임기를 마치고도 만 3년 넘게 동아대학보에 남아 선임기자로 계속 취재하고 글을 쓰고 있다. 박 기자는 “대학을 작은 사회라 하지 않나. 이 안에도 권력기관이 있고 의사결정 행위나 업무 집행 과정 등이 있기 때문에 대학 언론이 견제자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 언론의 처우 개선 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 그래서다. 그는 “대학 언론이 경쟁력을 갖추고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은 소명 의식이 있다”며 “대학 언론인으로서 제가 하고 싶은 기사들을 성에 찰 때까지 쓰다가 떠나고 싶고, 계속해서 저널리즘 가치를 구현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남궁현씨 역시 한때 기자를 꿈꿨다. 사진 동아리에 있을 때도 출사를 나가면 아름다운 꽃과 경치 대신 시위 현장을 주로 찾을 정도로 포토 저널리즘에 관심이 많았고, 당연히 사진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졸업을 1년여 앞둔 지금, 딱히 기자를 준비 중인 건 아니다.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지만, 그게 꼭 기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도, 영상도 좋아하는 그는 하고 싶은 게 많다. 그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또 이야기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관심이 많다”며 “이쪽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그의 목표가 기성 언론의 문법 속 저널리스트와 거리가 있으면 어떤가. 그가 즐기고 지향하는 일이 저널리즘에 가까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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