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의 우크라이나 현지 입국 취재가 지난달 18일부터 일부 허용됐다. 지난 2월13일 우크라이나 전 지역에 흑색경보(여행금지)가 내려진 지 한 달여 만이다. KBS와 SBS를 시작으로 이달 초까지 연합뉴스, YTN, 동아일보, JTBC, MBC 등이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지역에서 각각 3일씩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다.
우크라이나에 들어간 국내 취재진은 체르니우치주(州)의 국경수비대원으로부터 “무사히 취재를 마치고 살아 돌아오라”는 무시무시한(?) 응원을 받고, 입국 첫날부터 울린 공습 사이렌에 서둘러 지하 대피소로 몸을 피하며 전쟁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전쟁의 참화가 실제 미친 곳이 아니라 특별히 무섭단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양동훈 YTN 기자는 전했다.
취재의 어려움은 다른 차원에 있었다. 한정된 시간에, 한정된 지역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써야 했기 때문이다.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틈틈이 방송용 리포트를 만들고, 한국의 뉴스 시각에 맞춰 생중계 연결도 해야 했다. 외교부가 허락한 3일의 시간도 취재하기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고 유원중 KBS 기자가 호소한 이유다.
파리 특파원인 유원중 기자는 지난달 18~20일 SBS와 함께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를 하고 돌아와 지난 5일 ‘‘2박 3일’의 전쟁 취재와 외교부의 후진적 언론관’이란 제목의 특파원 리포트를 썼다. 유 기자는 “우크라이나 취재를 통해 경험한 건 전쟁 상황보다 외교부 ‘예외적 여권사용’ 제도의 허술함과 답답함”이라고 토로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여권법과 시행령 등에 따라 우크라이나 취재 목적의 예외적 여권사용을 허가하면서 몇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체르니우치주 지역에 한해 하루 4명 이내, 방문 기간 3일 이내로 입국 신청을 받겠다는 것이었다. 신청 대상은 외교부 출입 언론사로만 한정됐다. 이렇게 해서 하루 언론사 두 팀, 각 2명(취재+촬영기자)의 입국 취재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지나친 제약 탓에 제대로 된 취재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유원중 기자는 “취재를 하러 간 건지, 방송에서 ‘나 우크라이나에 들어왔어’라고 증명사진이라도 찍으러 들어온 건지 분간이 안 됐다”고 했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취재를 하고 온 조희원 MBC 기자도 “이처럼 장소도, 일정도 지정하고, 취재 계획도 사전에 제출하고, 이를 벗어날 경우 여권법 위반을 적용하겠다는 외교부의 발상과 인식은 80년대에 머물러 있단 생각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조 기자는 “이번 우크라이나 취재에서 리비우에도 들어가지 못한 건 한국 언론뿐이었다”며 “자국민 보호 때문인지, 외교부가 골치 아픈 일을 만들기 싫어서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반면 안전을 고려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달 21~23일 현지 취재를 한 양동훈 기자는 “2박3일은 짧은 기간이고, 충분히 취재하기에 조금 부족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한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따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는 한다”고 말했다.
이우성 외교부 해외안전관리기획관은 “우크라이나는 전쟁 상황이고, 당시에는 우리 대사관 임시 사무소가 있는 체르니우치가 안전을 고려해서 내줄 수 있는 지역이었다”며 “당시 리비우도 폭격을 당하고 위험하니까 지역을 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국 가능 인원 등을 제한한 것도 “대사관도 어렵고, 여행금지 국가이기 때문에 안전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제한된 인력으로 많은 언론이 들어오면 대응할 수 없지 않나”라며 “외교부 기자단과 협의해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여행금지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안 된다”고 했다.
다만 외교부는 유럽 국가 대사관들이 속속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복귀 결정을 하는 만큼 우리의 현행 조치도 개편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우성 기획관은 “상황이 좀 나아져서 우리 대사관도 (키이우로) 들어가는 걸 검토하고 하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언론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취재 제한 등의 조치를 외교부가 일방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언론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희원 기자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서라면 통제가 아닌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취재 방식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하는 게 맞는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기자들은 취재 욕심이 있으니까 ‘조금 더’ 하는 게 있고, 외교 당국 입장에선 전쟁의 위협 속에서 종군기자의 안전에 대한 염려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양론이 공존하는 것 같다”면서 “기자협회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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