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극상’을 이유로 정치부장에서 경질되고 중징계를 받았던 서울신문 기자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낸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서울지노위는 안동환 기자를 19일 만에 보직 해임하고 국제부 전문기자로 발령한 것과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내린 것 모두 부당하다고 봤다. 지난달 30일 판정서를 송달받은 서울신문 측은 “납득할 수 없다”며 재심을 신청할 뜻을 밝혔다.
군대도 아닌 언론사에서 하극상 때문에 문책성 인사를 했다면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다는 걸까. 내내 가졌던 궁금증을 풀기 위해 37쪽짜리 판정서를 꼼꼼히 읽었다. ‘결정타’가 됐을 지난해 11월11일 안동환 당시 정치부장과 황수정 편집국장의 통화 녹취록도 자세히 살폈다. 그러나 확인한 건 두 사람의 언쟁과 갈등뿐이었다. 심판위원들의 판단도 비슷했던 것 같다. 지노위는 “위계질서를 문란케 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발언을 했음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안 기자가 정치부장으로서 편집국장의 업무지시 등을 지속해서 따르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증거자료가 불충분해 실제 존재했는지 분명치 않다”고 했다. 한 마디로 하극상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녹취록엔 나오지 않지만, 서울신문 측은 당시 안 기자가 편집국장에게 “정치부장한테 이래도 되는 겁니까!”, “나는 정치부장입니다!” 등의 ‘막말’과 ‘고성’을 쏟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는 신문사 위계질서 내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사람마다 수용 가능한 막말과 고성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 기사가 빠지거나 줄었다고, 정치부장이 편집국장의 지면변경에 대해 토를 다는 게 용납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이 정도가 ‘있을 수 없는 일’일까.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어떨까. 취재 기자가 국장단의 기사 출고 보류 결정에 반발해 기사 원문 등을 전체 구성원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외부에까지 공개됐다면? 유례없는 이 일이 지난 2월 한겨레에서 벌어졌다. 당시 한겨레도 기자가 ‘항명’ 했다며 징계부터 했을까. 한 달 뒤, 류이근 편집국장은 해당 기자의 징계를 요구하긴 했다. 대신 그 대상에 자신도 포함해 달라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사태를 막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크다”며 “의견을 나눈 뒤 차이를 좁히고, 결정을 수용토록 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고 했다. “(정치부장과) 편집국장 사이에 원활한 업무협조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한 귀책사유”를 일방에 묻는 서울신문과는 달랐다.
신문사에서 정말 있을 수 없는 일, 있어선 안 되는 일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사주가 바뀐 뒤 사주 맘에 들지 않는 기사를 몽땅 삭제해 버리는 일. 사주의 심기를 거스를만한 기사는 어떤 경우에도 쓰지 않는 일. 황수정 국장은 호반건설 비판기사가 무더기 삭제된 직후 열린 기자총회에서 기사를 거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부당거래’를 계획한 전임자들 탓을 하고 싶었겠지만, 이를 실행에 옮긴 건 현 경영진과 국장이다. 어떤 이유를 대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 편집국장과 보직 부장이 대립하는, ‘있을 법한 일’에는 펄쩍 뛰면서 기사 무더기 삭제라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선 두 달 넘도록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사과 없이 “이해와 혜량”을 부탁하는 일이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 다시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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