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옷값'에 묻혀버린 靑 특활비 공개 거부
[온라인 커뮤니티 글 받아 기사화]
靑 특활비 공개 거부했다는 사안이
'영부인 얼마나 사치했나'로 뒤덮여
"옷값 초점 맞춘 진영싸움으로 호도"
지난달 28일 TV조선 ‘뉴스9’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가 출처로 표시된 뉴스 화면<사진>이 등장했다. TV조선은 <‘김정숙 옷값’ 횡령·강요죄 고발까지…‘비공개 조치’ 반발한 헌법소원도 검토> 기사에서 김정숙 여사가 공개석상에서 입은 옷과 액세서리 수를 열거한 디시인사이드 게시글을 갈무리하며 “청와대가 최근 김 여사 의전비용 등 특활비 지출내역을 공개하라는 행정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클릭 수 목적의 온라인 기사에서 흔히 다뤄졌던 커뮤니티 보도를 받아쓴 보도가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나온 사례다.
이후 매일경제 논설위원의 온라인 칼럼에도 ‘네티즌 수사대’라는 지칭으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 인용됐다. 지난달 30일 <옷값 논란 키운 건 국민 알권리와 싸우는 청와대다 [핫이슈]> 칼럼에는 “네티즌 수사대에 따르면 김 여사가 공개 석상에서 입은 의상은…”, “네티즌 수사대가 확인한 액세서리만…” 등이 언급됐다.
영부인 옷값 논란이 한창이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 등의 정보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 지난달 2일 청와대가 항소하면서 비롯된 이번 사안은 특활비가 김정숙 여사의 의상비로 쓰였다는 의혹 제기와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2억원 까르띠에 브로치’ 등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시작된 김정숙 여사 옷값 관련 의혹 보도가 쏟아지면서 ‘청와대가 특활비 공개를 거부했다’는 사안은 ‘영부인이 얼마나 사치를 부렸나’에 대한 이슈로 뒤엎어진 양상이다. 특활비 정보 공개 판결을 이끌어낸 한국납세자연맹이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언론들과 정치권은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에만 초점을 맞추며 진영싸움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청와대 특활비 공개 거부가 옷값 논란으로 치닫게 된 건 김정숙 여사의 의상 수를 분석한 게시물과 신평 변호사의 페이스북 글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부터다. 지난 2018년 납세자연맹은 청와대에 ‘대통령 및 김정숙 여사 의전비용’, ‘특수활동비 지출내용’, ‘장차관급 워크숍에서 제공한 도시락 가격’ 등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청와대는 “국가 안보 등 민감한 사항이 포함돼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이에 납세자연맹은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10일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청와대는 지난달 2일 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다. 당시에도 대부분 언론사가 영부인 의전비 공개 부분만을 강조해 보도했지만, 판결과 항소 내용을 전하며 청와대의 항소로 해당 자료가 대통령기록물이 돼 최장 30년까지 열람·공개가 불가능해지는 점 등의 문제를 짚었다.
대선 이슈로 해당 사안은 잠시 잠잠하다 지난달 27일 조선일보의 <“코트만 24벌, 롱재킷 30벌…” 靑옷값공개 거부에, 네티즌 직접 카운트> 기사를 시작으로 몇몇 커뮤니티 글이 본격적으로 온라인 기사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김정숙씨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사용해 남편의 임기 내내 과도한 사치를 했다고 한다”는 신평 변호사의 SNS 속 주장을 그대로 실어 나르는 보도들도 잇따랐다. 결국 영부인 옷값 의혹으로만 사안이 집중되면서 청와대도 지난달 29일 “대통령 배우자로서 의류는 모두 사비로 부담했다”며 사실상 정보공개 판결 항소에 대한 명확한 이유 대신, 옷값 논란 관련 입장만을 밝힌 상태다.
이 같은 보도 양상은 오히려 사회 구성원 간의 건설적인 토론이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온다. 강성국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활동가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 특활비에 대해 문제 제기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선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하나도 없었다. 의혹에 대해 명확히 하기 위해선 특활비 공개를 하면 되는데 논란을 더 증폭시키는 입장만을 내놓고 있어 소모적 논쟁의 빌미를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다른 분야에선 뛰어난 취재 능력을 보이는 언론이 이번엔 커뮤니티에 나온 의혹을 그대로 받아쓰면서 불쾌함만 양산하고 저열한 논쟁으로 재확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결국 피해자들은 국민”이라며 “밖에서 의혹이 나왔다면 그걸 해소하거나 개선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인데 오히려 감정들을 악용해 악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납세자연맹은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언론들이 정보공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개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며 “언론인들에게 투명사회 실현을 위한 정당한 납세자운동을 협량한 정파싸움으로 몰아가지 않도록 정중히 당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납세자 연맹은 정부 지원 없이 시민들 소액으로 유지되는 단체”라며 “특활비라는 나쁜 특권, 제도에 대한 본질에 접근하지 않고 김정숙 여사 옷값으로만 집중적으로 보도가 되면서 납세자연맹이 한쪽 편만 드는 쪽으로 오해받기 딱 좋게 기사가 나왔더라. 10년~15년 이상 장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던 회원들 중 일부가 오해하여 탈퇴한 일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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