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지난달 28일(한국 시간) 오전 8시50분, 영화 기자들은 일제히 TV 앞에 앉았다. 국내에선 TV조선이 오스카를 4년째 독점 생중계 해왔다. 영화전문 매체에서 5~6년 간 근무한 박꽃 이투데이 문화전문기자는 재택근무로 시상식을 취재했다. 노트북을 놓고 등장 인사들의 발언을 받아치고 분위기를 읽는다. “실시간 통역을 해주지만 틀릴 수 있기 때문에 영어도 들으며 신경을 쓴다.” 전문 매체 때와 달리 스피드가 중요해져 “독자 관심을 끌 소스는 곧장 기사를 낸다.” 상세 내용을 담은 기사는 따로 쓴다.
배우 ‘윌 스미스의 폭행’, ‘윤여정 배우의 수어 시상’ 등이 화제가 됐다. 애플TV+가 제작한 영화 ‘코다’의 OTT 최초 작품상 수상도 입길에 올랐다. 누군가에겐 가십이거나 의미 없는 정보 나열일 테지만 영화를 매개로 이뤄진 이 행사는 영화 기자들에겐 일이다. ‘근무시간에 영화 보고 배우 만나고 좋겠다’는 시선은 영화가 업인 삶을 알지 못한다.
박 기자는 일주일에 영화 3~4편을 봐왔다. OTT 콘텐츠까지 확장하면 1년에 200~240편을 보는 일상이다. “영화기자 일은 10편 중 9편 재미없는 영화를 보는 거다. 영화 러닝타임 2시간에 오가는 시간까지 3시간, 주차비와 식비를 쓰며 조악하거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영화를 본다. 햇빛을 못 보는 직업이다. 비평을 하자면 합당한 수준의 근거를 (영화에서) 찾아야 하니 잘 보려한다. 일반 기자와 어떻게 다르게 쓸지도 고민한다. OTT는 스크린과 달리 돌려볼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들어 어려움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가까워지면 영화기자들은 더 바빠진다. 2월 초 후보 지명작이 발표되면 못 본 후보작을 보고, 수상 시 수립되는 기록이 뭔지 살핀다. “‘이 영화는 연기 중심, 이건 촬영 중심이구나’를 염두에 두고 메모하며 봐 나간다. 수상 시 어떤 기록이 세워지고 어떤 의미인지 정리한다. 예컨대 ‘파워 오브 도그’의 제인 캠피온 감독은 여성으로서 3번째 감독상 수상자다. 1995년 ‘피아노’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쉰들러 리스트’와 경쟁했지만 여우조연상 수상에 그쳤고, 올해 재차 맞붙어 반대로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94년 역사에 수많은 스토리가 보도 포인트니까 그걸 정리한다.”(배동미 씨네21 기자)
올해 현지 취재를 간 국내 매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을 당시 다수 매체가 미국에 간 일이 이례적이다. 미국 개봉 영화에 회원들이 상을 주는 ‘쇼’ 성격이 강하고, 영화보다 영화산업에 대한 고려가 큰 오스카는 영화기자들에게 현지 취재까지 할 곳으로 꼽히진 못한다. 허가증 신청 중 70%는 탈락되고 레드카펫을 돌아다니며 인터뷰 하는 경우는 상위 3% 매체에 불과해 큰 비용을 써서 가도 현지반응 이상의 취재는 못할 소지도 크다.
다만 소위 ‘세계 3대 영화제’ 취재를 가더라도 이국적인 풍경 속 유명 배우나 감독을 우아하게 인터뷰 하는 환경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 칸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온라인 전송을 먼저 하고, 시차가 있으니 한국 시간에 맞춰 ‘저 사람은 잠을 안 자나’ 싶을 정도로 기사를 쓰고 다들 정신이 없다. 너무 포멀해진 분위기로 요건도 좋지 않다. 수백개 매체와 공동기자간담회를 하고,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대면도 10여개 매체가 같이 하니 좋은 대화를 나눌 환경이 아니다. 축제 분위기를 느낄 순 있지만 영화기자들에겐 ‘올림픽’ 취재 같다.”(백승찬 경향신문 기자) 자체비용 부담, 팬데믹 영향 등으로 해외 취재는 ‘칸 영화제’ 정도만 간신히 거론되는 게 요즘 분위기다.
영화기자들이 해야될 역할은 확대되는 추세다. 씨네21은 지난해부터 트위터의 실시간 음성 대화 기능인 ‘스페이스’를 통해 감독, 청취자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이를 콘텐츠화 해왔다. 시상식이 생중계되던 시간대엔 자사 기자와 통신원 등 5명이 대화방을 열고 수상작 관련 설명, 해설을 전했다. 배동미 기자는 “기사만 쓸 수 있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며 “여러 매체가 있지만 SNS 기반으로 해보자 싶었고 트위터 팔로워 수가 많은 편(약 45만명)이라 시도해보고 있다. 친밀감에 강점이 있다. 출연한 감독과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과정을 들려주고 이를 지면에 다시 녹이는 식으로 유기적으로 운영 중”이라고 했다. 아카데미 관련 대화방에 대해선 “출근시간에 열렸는데 4시간 동안 200~300여명이 동시 접속 해주셨다. 영화에 애착을 가진 분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라고 했다.
이번 시상식은 배우 윌 스미스의 폭행 건이 입길에 오르며 널리 회자됐다. 이후 국내·외 여러 매체서 코미디의 경계와 폭력의 적절성 등 사안의 함의를 두고 의견이 나왔다. 영화 외 사건이 이슈가 됐다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는 역으로 영화나 영화제가 단지 볼거리이거나 그냥 영화, 영화제가 아니란 방증이기도 하다. 백승찬 기자는 “‘코다’의 수상은 작품 자체보다 청각 장애인 이야기란 점의 의미, 즉 정치적인 올바름에 대한 추구가 있었던 결과로 본다”며 “직업적으로 영화를 보는 건 영상을 보며 산업, 영화, 배우 등 측면에서 어떻게 적절한 기사로 풀어낼지 생각하며 텍스트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안 좋아하는 영화를 만나는 게 사회부·정치부에서 그런 취재원을 대할 때보다 괴로울 수 있다. 일인데 ‘근무시간에 영화보면 좋겠다’는 말은 무례한 농담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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