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은 최근 특별한 잡지를 내놨다. 올해 창간 28돌을 맞은 시사주간지는 1405·1406호가 합쳐진 160페이지 분량의 기념 특대호를 21명의 글쟁이·저술가 인터뷰만으로 채웠다. 이름하여 ‘21 WRITERS 2’. 동수의 문학작가 인터뷰로 통권호를 만들어 화제가 됐던 2020년 8월 1326·1327호에 이은 두 번째 ‘작가 기획’이다. 이번엔 기자·출판 관계자 추천을 받고 글쓰기 지향, 분야, 성별을 고려해 비문학 작가를 대상으로 했다. 시사주간지로선 1~2주간 사회적 사건 대신 ‘글쓰기’와 ‘작가’ 얘기를 다루기로 한 나름의 결단이다.
이런 인터뷰는 인터뷰어를 난감하게 한다. ‘글쓰기 비법’에서 시작해도 결국 ‘왜 글 쓰는 삶을 선택했는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한 삶 전체가 덤벼드는 일종의 “전인적 인터뷰”여서다. 심지어 인터뷰이들은 탁월한 글쟁이들이다.
김혜리 영화기자를 인터뷰한 방준호 기자는 “어릴 때부터 좋아한 필자라 뵙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인터뷰집까지 낸 분을 인터뷰한다는 게 겁이 났다”고 부담을 표했다. “상대 말에 귀 기울이고 진심으로 헤아려 그 사람 안에서 의미 있는 걸 뽑아내려 노력하는 분들이라 스스로를 되새겨 볼 수 있었다. 나머진 굉장히 안 괜찮았다(웃음). 보통 인터뷰에선 벌어진 일을 묻는데 그게 아니다보니 질문지 작성부터 어려웠다. 인터뷰 때도 너무 얼었다. 잘 써야한다는 부담도 컸는데 지금 기사는 다시 안 보려고 하고 있다(웃음).”
한겨레21 기자 12명, 사내외 필자 9명이 사진기자들과 함께 작가 21명을 차례로 만났다. 작가들의 다양한 특성만큼이나 인터뷰어들의 개성, 노력도 각 기사에서 나타난다. 작가의 작업실·서재공간, 작가별 출간도서 목록과 특정 책 구절 등은 공통적으로 담아내려 했지만 문답형·줄글 같은 형식, 기사 본문을 채우는 재료와 방식은 제각각이다. 이정규 기자는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는 은유 작가의 ‘쓰게 하는 사람’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작가의 글쓰기 수업에 참석했다. 본인의 말 이상을 들으려 주변인도 취재했다.
“인터뷰는 사람을 보는 거니까 일, 생활, 행동도 봐야겠다 싶었다. 작업을 하신다는 카페에 한 시간 먼저 가서 일하는 모습을 보려했는데 안 계셨다. 대신 약속시간이 10분 남았는데 땀 흘리며 뛰어오는 모습을 봤고 평소 성실함을 엿본 것 같아 에필로그에 적었다. 작가는 한 번만 쓰면 작가지만 글 쓰는 사람은 계속 써야 ‘글 쓰는 사람’이란 말이 좋았다. 무엇보다 ‘누구나 쓰는 사람이 될 수 있고, 쓰면 삶과 세상이 변한다’는 걸 전하고 싶었다. 쓰는 사람이 늘면 양질의 독자도 늘 거란 어렴풋한 희망도 떠올렸다.”
특히 서문이나 에필로그는 그를 바라보는 인터뷰어의 꼼꼼한 시선, 섬세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독자인 시민과 마주보기를 거부하지 않는” 글로써 판결문을 쓰고 이런 취지의 책도 펴낸 박주영 부산지법 동부지원 부장판사를 인터뷰한 고한솔 기자는 에필로그에서 그의 사무실 구석 두 상자에 주목했다. 10년 전 소년부 판사로 발령 나 근무하던 기간, 소년범과 그 부모들을 마주할 때마다 기록하고 차마 버리지 못한 메모들. “마침 사무실을 둘러보다 박스더미가 보였다. 소년부는 판결문을 작성하지 않아 ‘3대가 덕을 쌓아야 간다’며 축하받는 자리라고 하는데 판결문이 아니더라도 늘 말과 글을 붙잡은 채 소년범과 소통하려고 노력하고, 풀어내지 못한 걸 메모로 남기고, 이걸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게 인상적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좋은 글을 쓰고 싶다. 글과 연대하는 삶이라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겠냐’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여러 작가들을 ‘대면 인터뷰’ 해 모아내는 기획은 뜻밖의 비상사태(?)를 맞이하기도 했다. 엄지원 취재1팀장은 지난 2월부터 문학평론가 신형철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섭외에 나서 ‘오케이’ 사인을 받았지만 인터뷰 직전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화 인터뷰도 어려운 볼륨이라 ‘킬’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기꺼이 서면으로 답을 주시겠다고 해서 성사가 됐다. 질문지에 공을 들여 ‘제가 이거 다 읽었다’는 존중을 최대한 담으려고 했고(웃음), 예시도 많이 들어 정확히 전하려고 했다. ‘쪼렙’이 ‘만렙’의 세계를 써야 해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 거의 밤을 새서 보내주셔서 죄송스러웠다.”
매체에서 이번 기획은 6번째 통권호 제작 시도다. 한겨레21은 ‘체인저스’ ‘쓰레기TMI’ 등으로 커버스토리 차원을 넘어선 주제별 통권호를 선보여왔다. 특히 ‘작가 기획’은 높은 관심을 받아왔다. 첫 시도 당시 완판이 됐고, 이번에도 모 인터넷서점에서 사전예약을 받은 지 일주일 만에 ‘주간 잡지’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황예랑 편집장은 “주간지의 경우 신속하고 빠른 보도보다 깊이 있는 단행본 같은,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에버그린 콘텐츠에 독자 수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들이 읽고 싶은 주제가 뭘지 고민해 왔고 잡지 독자의 여러 성격 중 종이에 대한 물성 선호, 글쓰기에 대한 높은 관심 등에 착안해 작가들의 얘기를 모은 기획을 진행하게 됐다. 향후 범위를 넓혀 시인이나 드라마 작가 인터뷰 등에 대한 연작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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