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를 사고, 판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 기업 활동이 언론 산업의 쇠퇴, 기자 직업에 대한 만족도 하락과 맞물리면서 언론계 전반에 허탈감과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여러 언론사가 팔렸고, 또 다른 언론사는 팔릴 준비를 하고 있다. 사양 산업 길에 있는 언론사를 ‘구매’하는 자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하지만 자본에 넘어간 언론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볼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큰 상황이다.
지난 17일 대구·경북 지역 일간지 매일신문이 지역 운송업체인 코리아와이드에 매각됐다. 이 같은 사실은 다음날 실·국장 회의를 통해 알려졌다.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72년간 보유해온 지분 98.92%를 전량 매각하는 과정은 비밀에 부쳐졌다.
중앙그룹 자회사인 중앙일보S는 지난 21일 치킨 프랜차이즈 BHC와 일간스포츠, 이코노미스트를 매각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매각 추진 사실을 알지 못했던 해당 매체 구성원들은 크게 동요했고, 비상대책위원회에 이어 노조를 만들며 공동 대응에 나섰다.
언론사를 사고파는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최근 1년 동안만 해도 여러 언론사의 주인이 바뀌었다. 지난해 호반건설은 kbc광주방송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전자신문, EBN, 서울신문을 차례로 사들였다. 호반이 떠난 광주방송은 제이디투자(유)를 대주주로 맞아들였다. 아시아경제는 지난해 7월 사모펀드 운용사를 최대주주로 맞는 지배구조 변화를 겪었다. 이보다 2년 전에는 중흥그룹이 헤럴드(헤럴드경제·코리아헤럴드) 지분을 인수하며 새로운 최대주주가 됐다.
언론사도 기업이니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다. 문제는 언론사가 단순 사기업이 아닌 사회적 공기(公器)이며, 지배구조의 변화가 언론사의 ‘상품’인 기사와 저널리즘의 질과 직결된다는 점이다. 한선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자본의 언론 소유가 (언론을) 사회적 공기로 생각한다거나 문화 창달,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차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고파는 게 돼 버렸다”면서 “이득이 되거나 이득이 될 것으로 예상하면 사고, 실제로 이득이 안 되면 파는 행태를 보이는 게 사실이고 이는 당연히 저널리즘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가 서울신문이다. 서울신문은 호반으로 주인이 바뀐 지 3개월 만인 지난 1월, 과거 보도했던 ‘호반건설 대해부’ 기획 기사 50여건을 온라인에서 모조리 삭제했다. 지난 17일엔 공정거래위원회가 김상열 호반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했으나 서울신문과 전자신문, EBN에선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코리아와이드와 BHC의 언론사 인수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각이 있는 건 이런 전례들 때문이다. 전국언론노조는 지난 22일 성명에서 “서울신문을 인수한 호반건설의 행보가 보여주듯 어떤 형태로든 이익이 없는 언론사 소유란 있을 수 없다”면서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은 메가시티 출범을 앞두고 광역단위 재개발에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탐욕에서 코리아와이드가 얼마나 자유로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충원 아닌 ‘반발 줄이려’ 해주는 급여 인상, 투자라고 볼 수 있나?”
경영난을 겪는 중소 매체의 경우 대기업 자본의 참여를 내심 바라기도 한다. 임금 인상 등 처우 개선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전자신문은 호반에 인수된 뒤 3년간 연봉 30%를 올리는 임금협상을 체결했고, 서울신문은 우리사주조합 지분 매각 대금과 별개로 1인당 평균 7500만원(총 210억원)의 특별위로금을 받아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일시적인 임금 인상을 ‘투자’로 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은 “신문사에서 투자라고 한다면 큰 시스템의 변화나 신규인력 충원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전반적인 언론사 구조 변화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단순히 인수에 대한 반발을 줄이기 위해 급여를 보충해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호반은 약 700억원을 들여 서울신문을 사면서도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요구한 편집권 독립 조항과 고용보장 방안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저널리즘 위축 등의 우려가 더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선 교수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지역에 근거해 비즈니스를 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팩트와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이라는 기본이라도 지켜야 한다”면서 “그런데 잿밥에만 관심 있는 자본이 들어와 열심히 일하려는 기자들을 좌절하게 하고, 떠나게 하고, 그래서 독자와 시청자는 더 떠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등은 언론사주는 ‘공인’이고 언론사는 “물건처럼 자의적으로 거래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며 먼저 구성원들과 진정성 있는 소통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구성원 의사가 반영된 사장 선임제, 편집위원회 및 독자위원회 독립성 보장, 공정보도와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사내 민주주의 제도화가 그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언론노조 산하 30여개 신문·통신사 노조 협의체인 전국신문통신노동조합협의회도 지난 24일 성명에서 “매일신문 매각을 둘러싼 세간의 의혹을 불식하고 싶다면 무엇보다 코리아와이드 측이 과감한 행동으로써 입증해야 한다”면서 “코리아와이드가 매일신문 내부의 고질적인 관행을 청산하고 공정 보도를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선다면 그 누구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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