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SBS 뉴미디어국(현 디지털뉴스국) 단톡방에 스터디 모임 제안이 떴다. 당시 비디오머그팀에 있던 박수진 기자의 제안에 조을선, 장선이, 신정은 기자가 호응했다. 같은 뉴미디어국에 있지만 하는 일은 각기 달랐던 이들은 ‘뉴미디어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한국여성기자협회의 저술지원 선발을 계기로 그동안 공부하고 경험했던 내용을 정리해 책 ‘기자들 유튜브에 뛰어들다<작은 사진>’(인물과 사상사)를 펴냈다. 책의 공저자인 박수진, 조을선, 장선이 기자를 지난 21일 서울 목동 SBS에서 만났다. (또 다른 공저자인 신정은 기자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다.)
4년차부터 14년차까지 연차도 다른 네 기자를 한데 엮은 키워드는 뉴미디어였다. 이젠 뉴미디어란 말 자체가 올드해졌지만, 레거시 미디어 종사자에게 유튜브나 틱톡 같은 뉴미디어 세상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그런데 이런 낯선 세계로 인도해줄 마땅한 안내서조차 없다. “각기 다른 이유로 뉴미디어에 자원”했던 네 기자 역시 그랬다. 이들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모은 이유다. “길게는 3년, 짧게는 1년, 뉴미디어에서 했던 다양한 경험들을 기록으로 남겨서 앞으로 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라인, 혹은 오답노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박수진 기자)
책은 유튜브에서 ‘팔리는’ 콘텐츠의 비결을 알려주거나 성공담만 늘어놓지 않는다. 대신 10년 가까운 언론사의 디지털 혁신이 왜 실패했는지,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성과는 없었는지 세심히 들여다보고, 시행착오를 줄일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지상파 기자들의 뉴미디어 생존기’란 부제처럼 이론이 아닌 현장에서 무수히 부딪히며 얻은 경험들의 기록이다. 예를 들어 이런 일들. MBC 뉴미디어 채널 ‘14F(일사에프)’의 킬러 콘텐츠 ‘소비더머니’가 큰 호응을 얻자 SBS 비디오머그팀, “요즘 독자들이 저런 걸 원하나” 싶어 비슷한 지식 설명 콘텐츠를 제작해 내놓는다. 그런데 안 팔린다. 비디오머그 독자가 원하는 것과 14F 독자가 원하는 건 다르단 걸 이해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아동복 가게에서는 아동복을 팔자.’ 뼈아픈 경험이 남긴 교훈이다.
현재 장선이 기자는 D콘텐츠기획부에서 구독 모델 개발을 담당하고 있고, 나머지 세 기자는 뉴미디어 부서를 떠나 취재와 제작 부서에 몸담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뉴미디어와 연결되기 위해 노력한다. 보건의료팀 소속인 박수진 기자는 올해부터 ‘코로나 비하인드’라는 디지털 기사를 연재하며 일관된 브랜딩을 위해 콘텐츠 디자이너와 협업 중이고, 사건팀 신정은 기자는 3년째 틱톡에서 ‘기자 언니’로 활약하며 10대 독자들과의 소통에 힘쓰고 있다. 조을선 기자는 시사 대담 프로그램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팀에서 미디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TV와 유튜브, 제작진과 독자(이용자)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뉴미디어 활용법을 고민하는 기자는 이들만이 아니다. 올드미디어, 뉴미디어 구분 없이 ‘모든 게 미디어’인 세대의 기자들이 등장했고, 뉴미디어 부서를 희망하는 기자들도 전보다 몇 곱절 늘었다. SBS 보도본부는 아예 올해 조직개편을 통해 기획 단계부터 보도국과 디지털뉴스국이 긴밀히 협의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변화를 꾀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김수형 워싱턴 특파원이 미국의 오징어게임 열풍을 취재했는데, 당시 직접 딱지치기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도 보도국이 아닌 뉴미디어국의 팀장이었다. 박수진 기자는 “(콘텐츠) 전달 방식을 기자 혼자 생각하는 게 정답이 아닌 만큼 협업의 폭을 넓혀 가고 있다”며 “그러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이를 수용할 기자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조을선 기자는 이를 ‘탈경계’로 설명했다. “누구나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뉴스란 무엇인가 생각도 들고, 우린 뭐지? 우린 뭐가 달라? 의문이 들면서 암울해지는 부분도 있죠. 하지만 유튜브에서든 어디서든 우리가 디지털 스토리텔링 기술을 배우고 습득해서 구현해 나갈 수 있다면 꼭 회의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정답 대신 무수한 오답들이 있다. 장선이 기자는 “한 번쯤 읽어본다면 시행착오를 다시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중견 기자나 뉴미디어 경험이 없는 기자들은 책을 읽고 ‘뭔가 길이 보인다’며 반색했다. 고무적인 건 언론 종사자가 아닌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언론사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뉴스를 재미있으면서도 신뢰감 있게 만들려는 고민을 알아주는 자체가 반가웠습니다.”(장선이 기자)
‘신뢰할 수 있는 재미’는 비디오머그의 제작 원칙이자 유튜브 저널리즘 시대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전제라고 이들은 강조한다. “저널리즘의 문제는 디지털 뉴스에서도 계속된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유튜브 안에서 크리에이터와 경쟁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게 있죠. 우리는 선을 지켜야 하고, 그 선은 유튜브 앞에 놓인 것보다 더 엄격하다는 겁니다. 신뢰와 재미의 양립을 위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조을선 기자)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책 네 번째 장의 한 챕터 제목이다. 뉴미디어를 해본 이들은 “기자만으로는 일이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디지털 퍼스트’보다 ‘사람이 퍼스트’여야 하는 이유다. 뉴스 웹·앱 기획자, 작가, 영상 편집자 등 주로 비정규직인 언론사 뉴미디어 제작자들을 인터뷰해 ‘굳이’ 쓴소리를 들은 것도 ‘함께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장 기자는 “저널리즘을 기자, 저널리스트만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이에 더해 조 기자는 “기자들에게 기존 업무 플러스알파로, 마치 숙제를 또 얹는 식으로 디지털 퍼스트가 진행되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과제로 맡기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식으로, 실질적인 투자 등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쓰는 1년여 사이에도 뉴미디어 시장은 빠르게 변했다. 탈고하는 순간까지 여러 차례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의 깊은 고민과 진심을 알아주는 독자들 반응에 힘을 얻는다. “어떤 독자분이 저희가 쓰면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던 문장에 형광펜을 그어놓은 걸 봤어요. 감동적이더라고요. 우리가 고민한 문장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새롭게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그 자체만으로도 저희는 좋습니다.”(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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