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기사삭제 사태' 2개월… 기자들 응답 요구에도 회사는 묵묵부답
[언론노조 "공정보도 체계 마련하라"]
공정위의 김상열 회장 고발 사건
다수매체 보도에도 서울신문은 침묵
사라진 기사와 쓰이지 않은 기사. 둘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호반건설이다. 지난해 호반건설이 서울신문의 최대주주가 된 뒤 지난 2개월여 사이에 서울신문에서 일어난 일이다.
서울신문이 2019년 보도한 ‘언론 사유화 시도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 50여 편이 온라인에서 사라진 지 2개월이 넘었다. 기사 삭제 열흘여 뒤인 1월26일 편집국 기자 40여명은 황수정 편집국장과 장시간 토론한 끝에 다음날 한국기자협회 서울신문지회 명의로 성명을 내어 독자에게 삭제 경위를 밝히고 사과할 것 등 4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핵심은 기사 삭제 결정에 대해 사장과 편집본부장 등의 책임 있는 해명과 향후 편집권 침해를 막을 실질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두 달 가까이 지나도록 이 중 하나도 이행됐거나 진행 중인 것이 없다. 서울신문 52기 기자들이 지난 15일 다시 성명을 내어 “기사 삭제 사태 두 달, 무엇이 바뀌었습니까”라며 “이제는 응답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다.
다시 1주일이 지났다. 48기 기자들은 21일 성명을 내고 “이번에도 대충 ‘읽씹’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냐”며 “언제까지 기자들 요구에 묵묵부답, 입막음으로 대응하실 셈이냐”고 물었다. 본지 역시 황수정 국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22일 전화를 걸었으나 오전엔 “회의 중”이라며 끊었고, 오후엔 전화와 메시지에 모두 답변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침묵에 기자들은 “무력감을 학습”하게 된다며 참담함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신문 한 기자는 “문제 제기는 있지만 (기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구심점이 없다”며 “사실상 게임 끝난 거 아닌가, 피곤하니 이제 그만하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지난 1월 기자총회를 주도했던 기자협회는 이후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기자들의 요구사항을 편집국장이 받으면 회장 방침에 반기를 드는 셈이 되니 선택하기 쉽지 않단 걸 모르지 않고, 그렇다고 지금 국장이 물러나면 더 나은 국장이 나올 리도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강국진 서울신문지회장은 “저로선 딜레마, 고민이 있다”며 “후배들은 충분히 성명을 낼 수 있고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회장으로서 운신의 폭은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노조 역시 지난달 성명에서 “편집권이 수단과 방법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도록 구성원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명문화할 것을 제안”했지만, 후속 조치는 없는 상황이다. 김준 전국언론노조 서울신문지부장은 “편집에서 대의원 구성을 안 해주고 있어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김 지부장은 “경영진만 잘못했다고 할 게 아니라 (기사 삭제를) 협상안으로 사용한 우리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며 “(경영진에) 입장 밝히라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지정자료를 허위 제출한 혐의로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을 고발했으나 서울신문에선 이를 보도하지 않아 안팎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위는 김상열 회장이 “친족이 보유한 13개사와 사위 등 친족 2명을 누락한 행위를 적발”했다며 “법 위반행위에 대한 인식가능성과 중대성이 모두 상당하다”고 밝혔다. 이날 다수의 종합지와 경제지에선 관련 사실을 보도했으나, 서울신문은 보도하지 않았다. 호반이 친족 분리를 통해 계열사에서 제외된 친인척 회사로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은 2019년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쓴 기사에서도 제기됐으나, 이 기사 역시 지난 1월 삭제됐다.
이와 관련해 전국언론노조는 21일 성명을 통해 “서울신문 회장 김상열이 홈페이지에 밝힌 ‘정론직필’은 말할 것 없고 ‘사회적 책임’마저 저버린 행위로 읽힌다”면서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 자리를 계속 지킬 요량이라면 서울신문과 전자신문과 EBN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공정 보도 체계부터 마련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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