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바뀔때마다 흔들린 '공영방송 독립성'… 이번엔?

KBS·MBC·YTN 사내서 우려 목소리… 안팎서 사장 흔들려는 시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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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언론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입김에 휘청거렸다. 보도와 인사에서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따라다녔고, 조직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겼다. 정권 교체기인 지금도 공영언론사를 정치적으로 재단해 독립성을 흔들려는 시도가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공영언론사 KBS, MBC, YTN에선 대선 이후 뒤숭숭한 분위기와 함께 과거의 혼란이 재연될까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다음날인 지난 10일, KBS 노조 가운데 두 번째로 조합원 수가 많은 KBS노동조합은 취임 3개월째인 김의철 KBS 사장을 향해 “대선 결과만 기다리며 눈치를 봤느냐”면서 “(자진 사퇴를) 결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이 노보에서 밝힌 퇴진 요구 이유는 KBS 노조 중 규모가 가장 큰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소속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올라 있는 등 내부적으로 인적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고, 여당을 엄호하고 야당은 비난하는 KBS 보도에 대한 책임을 사장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2년 3월8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전국언론노조가 주최한 KBS·MBC·YTN 공동 파업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낙하산 사장 퇴출, 징계철회, 공정방송 쟁취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도 파업에 동참해 공영언론사 4곳이 처음으로 동시 파업을 벌인 해였다. /뉴시스


지난 17일에는 KBS 한 시니어 기자가 사내게시판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사장 사퇴를 촉구했다. 이 기자는 <사장 앞에 놓인 명예로운 언론인의 길>이라는 글에서 “탄핵을 발판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권 이후 KBS와 MBC 등 공영언론을 장악한 민주노총(전국언론노조) 출신 사장과 경영진, 기자들은 기계적 중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불편하게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현 사장 체제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주장이다.


YTN에서도 정치적인 시선에서 사장을 직격하는 글과 지라시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선 직후 우장균 사장이 실국장 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길 희망한다. 있을지 모를 외풍은 사장으로서 막겠다”고 말한 것을 두고 ‘민주당 비위 맞추다 선거 하루 만에 배를 갈아 탔다’는 야유가 담긴 글이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YTN 사측 관계자는 “지라시 내용은 현재 YTN 내부 분위기에 맞지 않다”며 “사내 인사가 해당 글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권 교체기의 변화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겨보려는 사람들의 한심한 행태”라고 반박했다.


정권의 의중이 직간접적으로 반영되는 구조인 공영언론사에선 이 시기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바로 5년 전 정권이 교체됐을 때도 KBS, MBC, YTN은 거센 후폭풍을 겪었다. 당시 전임 정권과의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취임한 사장들은 낙하산 꼬리표를 달았고, 노골적으로 보도에 개입하는 등 공영언론의 독립성을 훼손했다.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로 평가받은 조준희 YTN 사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 열흘 만에, 임기 10개월을 남기고 스스로 물러났다. 같은 해 11월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는 방송의 공정성·공익성 훼손 등 7가지 사유로 김장겸 MBC 사장을 해임했다. 이듬해 1월 고대영 KBS 사장도 같은 이유로 KBS 이사회 해임제청을 거쳐 해임돼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MBC와 KBS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을 위해 각각 71일, 141일간 총파업을 치른 결과였다.

전국언론노조가 2017년 9월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KBS, MBC 공동 파업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MBC 71일, KBS 141일간의 ‘공정방송 파업’ 끝에 김장겸 사장과 고대영 사장이 해임됐다. /뉴시스


현재로선 5년 전 불명예 퇴진한 세 사람과 지금 사장들을 동일선에서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2017년과 달리 2022년 사퇴 요구는 소수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다만 오는 5월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 상황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견하기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 인사들이 이들 언론사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공영언론사에서 과거의 혼란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정방송감시단 등이 주최한 <공영언론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토론회에서 “이번 대선에서처럼 방송이 편파적인 수준을 넘어 아예 특정 캠프의 스피커 역할을 하는 느낌까지 든 것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영방송이 권력 편향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여야의 눈치를 보지 않고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건전한 비판을 하면서 국민이 올바른 길을 가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5년 동안 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기자협회보가 인터뷰한 공영언론사 기자들은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상황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차기 정부 인사들의 인식과 발언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은 언론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KBS 한 기자는 “(정권 교체기마다) 여지없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 불안감과 이제는 짜증에 가까운 정서가 퍼져있는 것 같다”며 “현 집권당인 민주당이 (공영언론사 지배구조 개선)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런 상황이 또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MBC의 한 중견기자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무한 반복되는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게 바람직한 지배구조 모델이 생겨야 한다”며 “윤석열 당선인은 공영방송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이야기하는데, 기준에 따라 나에게 비판적인 보도는 편파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공영언론사 구성원들이 통상 강조해온 독립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YTN의 한 기자도 “윤 당선인이 공정방송이냐 편파방송이냐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을 가졌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며 “언론을 정상화하겠다는 말은 당연히 옳지만, 정상화 개념 자체에 본인의 철학이 담겨있는지부터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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