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의 피해를 입힌 ‘동해안 산불’이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됐다. 올해 20년차 김현태 연합뉴스 대구경북본부 기자는 이날 대구에서 차를 몰고 3시간을 달려 오후 6시께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연기가 자욱한 경북 울진에선 “큰 불이 안 보였고 불이 바람을 타고 삼척으로 넘어가는 상황”이었다. 삼척 취재를 위해 7번 국도를 탔다. 경찰의 출입통제를 지나 들어선 길은 “완전히 불바다”였다. 도로 양 옆 산과 주택이 타면서 열기와 재, 연기를 토해내 숨쉬기가 어려웠다. “터널을 3곳 지나는데 연기가 꽉 차고 불씨가 들이쳐 10m 앞이 안 보였다.”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하며 이 구간을 헤쳐 나왔다. 평소 차량으로 10분 거리인 삼척 원덕읍까지 1시간이 걸렸다.
“죽다 살았다” 생각하며 마지막 터널을 지나자 아찔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LNG 생산기지 불과 400m 앞까지 불길이 넘어와 있었다. 대피방송이 나오고 소방차들의 사이렌 소리에 현장은 전쟁터였다. 기지 300m 앞까지 번지던 불은 다행히 바람이 바뀌며 멀어졌지만 “첫날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통신이 두절돼 3~4시간 가량 휴대전화가 먹통이 되면서 울진에서 취재를 하던 동료 기자에게 “부고 기사 써야 되는 줄 알았다”는 ‘농반진반’의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닷새를 머물며 사진을 찍고, 속보를 날리고, 르포 기사를 썼다.
이날부터 지난 13일까지 불은 꺼지지 않았다. 열흘 간 서울 면적의 40%(2만4940ha)가 넘는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다. 생계수단을 잃고 삶의 터전을 빼앗긴 주민들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에 나섰고 지역 기자들은 이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며 따로 또 같이 불과 사투를 벌였다. 직접 불을 잡을 순 없지만 시시각각 현장 소식을 전해 위험을 알리고, 피해를 입은 지역민의 현실을 전하며, 당장 물심양면 필요한 지원을 촉구하는 역할이 임무였다.
“강원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불이 삼척으로 번진 4일 밤, 강원권 지역 기자들은 비상이었다. 이날 밤 8시께 삼척에 도착한 조기현 G1 기자는 “도로 양옆 산이 다 불타고 있어 ‘뜨겁고 무섭다’, ‘불지옥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는 느낌도 잠시 곧장 취재를 진행했다. 산불과 LNG 생산기지를 새벽까지 지켜보다 춘천 본사에서 나온 두 팀과 교대, 아침뉴스 준비를 위해 강릉 영동지사로 넘어갔다. 원주에서도 추가로 두 팀이 지원을 왔지만 밤새 뉴스를 제작하고도 다시 현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지역 곳곳에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일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강릉에서도 불이 나 동해로 번졌고, 영월에서도 산불이 났다. 삼척 지역 완진이 된 12일까지 현장 취재를 이어가며 쉬운 날은 없었다.
조 기자는 “강원도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지역 대선 아이템도 챙겨야 했지만 피해자가 많아 보도 수가 적은 주말에도 4꼭지씩은 했고 재난방송에 준해 데일리로도 계속 챙길 수밖에 없었다”며 “지역방송은 인력부족으로 바로 교대가 안 되는 부분 때문에 ‘조금만 고생하자’ 후배들을 다독이며 할 수밖에 없어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이세훈 강원도민일보 기자도 ‘24시간 대비’ 상태로 이 기간을 보냈다. 동해시 주재기자인 그는 소방서와 시청 같은 관공서, 산불 현장을 오갔다. 몇 년 전 산불 피해를 겪었던 터 지역민들의 위기감은 컸다. 그는 “2019년 망상 오토캠핑장이 탔을 땐 시가지와 거리가 있어 피부에 와닿진 않았을 텐데 이번엔 도심과 가까운 산에 불이 났다. 3000~4000명 주민이 대피를 했고, 검은 연기가 시가지 전체를 뒤덮어서 공포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그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온라인에선 피해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려 했고, 신문엔 분석·해설·전망 기사를 담고자 바삐 뛰어다녔다. “사무실 들어가는 시간이 아까웠고 카페에 가자니 커피를 계속 사야 돼서 거의 차에서 기사를 썼다.”
“삶의 터전 잃은 이재민들, 보상 막연해”…충분한 지원 필요
현장에 더 가까이 있어야만 하는 사진기자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권태명 강원일보 사진기자는 이 기간 삼척, 동해, 강릉을 오가며 ‘연기로 가득 찬 도심’, ‘불타버린 주택’, ‘불안해하는 강아지’, 헬기가 ‘짙은 연무 속 진화 작업’을 하는 모습 등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중앙지나 방송사처럼 3~4명이 같이 다니면 마음의 안정이라도 될 텐데 혼자 다니다 보니 ‘내가 불에 탈 수도 있다, 못 빠져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옥계에서 불씨가 날아가 동해에도 불이 났다고 옥계 주민들이 동해 주민들에게 미안하다는 현수막을 건 게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이번 ‘동해안 산불’을 취재한 기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이재민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을 촉구했다. 불은 꺼졌지만 이재민들의 회복과 일상 복구는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기간 MBC 본사 쪽으로 리포트·현장중계만 24꼭지를 보낸 배연환 MBC강원영동 기자는 “큰 가치가 있는 산림이 타는 걸 볼 수밖에 없었던 게 안타까웠다. 특히 주택이 전소되는 피해를 겪은 분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임시 주택이라도 빨리 제작이 돼 이재민들이 제대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며 “생계 큰 부분을 차지하던 임업 등에 피해를 보며 앞으로 20~30년 생계에 타격을 입고 삶의 터전을 잃은 분들에 대해 보상도 막연해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조기현 G1 기자는 “현장에서 소방대원, 소방차를 보면 환호해주지만 산림청 진화대원이나 의용소방대원 등으로 이뤄진 산불진화대원들은 같이 고생하는 데도 조명을 덜 받는 일이 생긴다. 이분들도 더 알아줄 필요가 있다”며 “방화든 실화든 처벌이 약하다. 초범은 100~200만원 벌금에 그치고 피해에 비해 인식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처벌을 강화해야한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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