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두 달 뒤면 출범한다. 정부 출범과 함께 내각이 꾸려지고, 국무위원 후보자 등에 대해 인사청문회가 잇따라 열릴 것이다. 2021년 3월 기준, 인사청문 대상 공직은 66개. 이 중 임기제 공직자의 상당수가 유임된다고 해도 앞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 후 한동안은 ‘인사청문 정국’으로 떠들썩할 전망이다.
2017년 11월 문재인 정부는 고위공직자 임명 배제 기준을 5대 비리에서 7대 비리로 확대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공직자들이 임명될 때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9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계기로 ‘인사 참사’ 논란은 극에 달했고, 당시 조국 장관 후보자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언론의 검증 보도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등 정치권과 언론 전반에서 거센 후폭풍이 일었다.
인사검증 단골 항목 중엔 논문 표절, 위장전입, 그리고 사생활 문제 등이 있다. 특히 교수나 학자들 사이에선 ‘나중에 정치하고 싶으면 논문 쓰지 말라’는 자조적인 말이 돌 정도로 논문 표절 의혹으로 명예가 실추되거나 후보자에서 낙마하는 사례는 많다. 한국언론법학회가 17일 ‘공직후보자 검증 보도의 쟁점과 나아갈 방향’이란 학술 세미나를 열면서 ‘표절과 연구윤리’, ‘공인과 사생활’을 주제로 택한 것엔 이런 배경이 있다.
유사도 높으면 표절이고 낮으면 아니다? ‘카피킬러’의 맹점
논문 표절은 그 자체로 비도덕적일 뿐 아니라 연구자로서 전문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문제는 논문 표절 의혹이 정밀한 검증이 아닌 ‘흠집 내기’ 수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정치적 노선에 따라 상대방 공격용으로 표절 검증을 수단화”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정교하고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표절 문제가 비전문가들에 의한 표면적 판단으로 한 연구자, 나아가 고위공직자의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연구자로서의 생명을 끊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조소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표절 논의가 지나치게 학문 외적 동기와 언론의 지나친 선정주의, 비전문가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표절이라고 흔들기 시작해 (임명에서) 떨어지면 끝이다. 뒷이야기는 없다”고 꼬집었다.
논문 표절 검증을 위해 언론이 자주 활용하는 것이 ‘카피킬러’와 같은 유사도 검색 프로그램이다. 비교 대상이 되는 논문의 유사도가 높으면 표절이라고 판단하는 식이다. 이인재 교수는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갖는 맹점이 있다”며 “쉽게, 성급하게 판단해선 안 된다”고 했다. 유사도가 낮아도 표절일 수 있고, 높아도 표절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카피킬러 같은 프로그램은 유용한 수단이지, 거기서 나온 숫자가 표절을 정해주는 건 아니다. (유사도가) 10% 나왔다고 해서 표절이 아니고 50%면 표절이란 식의 기계적 접근은 위험하다. 해당 전문가가 특정 연구자 고유의 것을 베꼈는지, 출처 표기 대상이 되는 데도 빠뜨렸는지 등 신중하고도 정밀한 검토를 통해 조금의 오해도 없도록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논문 표절 의심만으로도 연구자 치명적…정밀한 검증 필요”
이 교수는 “논문 표절 의심만으로도 해당 연구자의 이미지에 해를 줄 수 있다”면서 “언론에서 1차적으로 검증을 하더라도 최종 발표(보도)할 때는 관련 분야 전문가 등의 검토를 받아 논란의 여지를 줄여가는 신중한 보도를 하자는 차원에서 가칭 ‘공직자 표절 검증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전제는 언론사 내부에 표절 관련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언론사가 전문성을 함양하기 위해 꾸준히 워크숍을 열고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면서 “전문성을 가진 기자나 나름의 인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논문 표절 검증에) 접근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확성을 지키다가 신속 보도를 못 한다는 반박이 있는데, 속보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며 “정확성을 담보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는 매체일수록 대중이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소영 교수도 “인사검증은 신속해야 하고 표절 검증은 정확해야 한다. 따라서 검증 절차를 어떻게 체계화할 것인지 그걸 논의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사생활 검증은 속보 대상 아냐…근거 없는 물어뜯기 금물”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사생활 검증 역시 속보 경쟁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언론이 속보 경쟁으로 사생활을 판단하기보다 제대로 검증이 되고 있는가를 검증해주는 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검증의 주체가 청와대가 됐건 국회가 됐건 “100% 완벽한 후보자 검증은 없”기에 “언론이 이를 보완하며 검증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생활 보도를 잘못하면 트집 잡기식이 될 수도 있다”며 “언론이 제대로 된 파수견(watch dog) 역할을 못 하고 단순히 공격견(attack dog) 또는 사냥견(hunting dog) 역할을 하게 되면 검증 보도가 근거 없는 물어뜯기에 불과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민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언론의 고질적 병폐로 “선정주의, 검증 소홀, 따라가기 보도 행태, 정보 독점” 등을 꼽으며 “언론의 공직자 검증 보도에 대해 검증해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언론의 인사검증, 도움 안 되고 방해만 돼”…“매뉴얼 만들자”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언론의 공직자 검증 보도 양상을 △폭로 받아쓰기 △전문성을 검증할 전문성의 부재 △진영에 따른 선택적 검증 보도 등으로 요약했다. 그러면서 “이런 선택적 검증이 인사검증에 도움이 아니라 방해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2016년 TV조선이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을 보도한 뒤 조선일보 구독중지가 줄을 잇고 2019년 ‘조국 사태’ 때는 반대의 상황이 한겨레에서 나타났다면서 언론의 검증 보도를 정파적으로 오염시키는 세태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에 대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절실하다”고 했다.
기자협회를 비롯해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언론 현업단체 대표들은 공직자 검증 보도에 관한 준칙이나 가이드라인 마련 등의 필요성엔 공감했다. 김동훈 회장은 “공직자 표절 검증 심의위원회를 구성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부분에 대해 동의한다”며 “학계와 언론단체가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세찬 인터넷신문위원회 사무처장도 “현업단체들이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준영 한국영상기자협회 회장은 “각 언론사에 있는 가이드라인은 편의주의적이고, 취재 현장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 많이 있다. 언론사들이 제대로 (기준을) 갖춰서 공표해야 한다”면서 “기준에 맞춰서 공표한 결과에 대해 정확한 비판이나 의견이 수렴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이에 어긋나면 스스로 자율규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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