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 반 언론 정서가 만연하면서 기자들을 향한 온라인 괴롭힘이 일상화하고 있다. 특히 여성 기자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괴롭힘의 빈도와 정도는 더욱 심각해지는 상황이다. 여성 기자 개인이 온라인 괴롭힘을 해결하기엔 불가능한데, 이들의 삶에 지속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면서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는 지난 1년 여간 연구자들과 함께 온라인 괴롭힘의 특성과 영향력, 대처 전략을 파악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1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는 이 연구 사례를 발표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연구자들은 “기자로서의 정체성 그 자체 때문에 기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젠더‧인종‧민족‧종교 등 특정 사회적 정체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기자들은 더욱 표적이 되기 쉽다”며 “특히 여성 언론인은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를 위해 지난해 7~8월 21명의 기자를 심층 인터뷰했다. 연구를 맡은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는 “현재 여성 기자에 대한 괴롭힘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괴롭힘의 경험은 기자 일에 있어 ‘공기’처럼 존재하고 있다”며 “연차와 부서, 나이, 정치 지향을 불문하고 괴롭힘은 존재했다. 문화부, 편집부, 통신사 등의 여성 기자들처럼 상대적으로 괴롭힘의 경험이 덜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심각한 수준의 괴롭힘 경험이 차이 없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다만 난민, 소수자 쟁점을 다루는 사회부 기자들이나 정치‧법조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고 젠더를 다루는 기자들은 내용과 상관없이 ‘악플’이 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토론에 참여한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이사는 “몇 번 논평을 통해 성범죄 사건을 인권적 관점에서 말한 적이 있다”며 “그걸 보도하는 분이 여성일 경우엔 논평 뿐 아니라 그 여성 기자에게도 엄청난 댓글이 달리더라. 여성 기자들은 혐오가 일상화된 현재를 맨 앞에서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창욱 교수는 “악성댓글이 가장 흔한 유형의 괴롭힘이었는데 욕설, 외모 품평, 성희롱 성 댓글 등이 주를 이뤘다”며 “쪽지나 메일로 욕설, 성희롱 내용부터 극단적으로 강간, 살해 등의 협박을 보내는 경우도 존재했다.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 소셜미디어 계정 등에 찾아와 혐오성 메시지를 보내거나 온라인상에 개인 신상이나 얼굴을 공개 및 박제해 조리돌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 같은 혐오발언은 결국 혐오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에선 여성 기자 살해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고, 국내서도 여성 기자를 대면한 자리에서 실제 협박이나 폭언을 한 사례가 있었다. 김 교수는 “똑같은 기사를 작성해도 여성 기자와 남성 기자가 경험하는 혐오의 유형, 빈도, 정도가 달랐다”며 “똑같은 기사를 남녀 기자가 함께 작성해도 여성 기자에게만 협박성 메일이 오고, 이러한 문제 때문에 공격이 예상되는 기사 바이라인에서 아예 여성 기자의 이름을 빼고 남성 기자의 이름만 넣는 경우도 있었다.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여성 기자가 자신의 프로필에 사진을 올린 이후 갑자기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한 악플이 늘어나는 경우 역시 존재했다”고 말했다.
"개인적 대처는 근본적 해결책 될 수 없어"…조직적 대처 절실
그렇다면 이런 괴롭힘은 여성 기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연구자들은 여성 기자들이 무력감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면서 취재활동과 기사작성의 위축,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많은 인터뷰이들이 기자 일을 하는 목적 혹은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등 윤리적 동기를 이야기했다”며 “그러나 10년 뒤에도 기자를 하고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연차와 상관없이 대부분 아니라고 답했다. 괴롭힘은 저널리스트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형성한 고연차 기자들에게도 이미 형성된 정체성을 무너뜨리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저연차 기자들에겐 정체성 형성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여성 기자 대부분은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제대로 지원을 받고 있지 않아, 주로 개인적인 차원에서 온라인 괴롭힘에 대처하고 있었다. 개인적 대처는 크게 △완벽주의 추구형 △회피형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완벽주의 추구형은 기사 작성 시 작은 용어 하나하나, 문장의 뉘앙스까지 면밀히 확인하고 취업 전부터 온라인상의 모든 흔적을 지우거나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신상이 공개되는 것에 위축을 느끼는 유형을 말한다. 회피형은 최대한 공격에 덜 노출되기 위해 특정 주제, 부서, 취재를 회피하는 유형이다.
김 교수는 “완벽주의 추구형의 경우 너무 많은 에너지를 투입해 기사를 쓰다 보니 결국은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회피형의 경우에도 특정 부서를 꺼리게 되거나 아예 취재 자체를 꺼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더 심각해지면 언론인이라는 직업 자체를 그만두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회피는 여성 기자의 커리어 개발에 악영향을 주고 사내 및 언론계 내 평가나 평판에 있어 여성 기자들을 뒤처지게 만들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결국 언론 전체로 봤을 때 특정 주제에 관한 취재를 꺼리게 만드는 냉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적 대처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조직적 대처는 그만큼 절실하다. 그러나 현재 국내 언론사들의 경우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지 않다고 연구자들은 봤다. 김 교수는 “인터뷰 당시 기준으로 한겨레, 오마이뉴스, SBS 등이 괴롭힘 대응 가이드라인을 기자들에게 제공하거나 법적 대응 매뉴얼을 제작했다”며 “회사별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나 명확한 기자보호 가이드라인과 자사 기자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부서나 조직을 가진 언론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조직에선 기자들의 괴롭힘 문제를 무시하거나 방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그 원인으로 언론사 내부의 남성중심 문화를 꼽았다. ‘괴롭힘은 기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문화’와 ‘참기자 같은 이상화된 언론인상’ 등이 언론사 내부에서 결합돼 언론인 스스로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공론화하기 꺼리는 현상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류란 언론노조 SBS본부 성평등위원장은 “동료들의 문제 해결을 곁에서 함께 경험했는데 그때마다 피해자들이 하는 말이 ‘이런 일로 힘들 시간에 제보 하나 더 받아야 하는데 이따위 일에 신경 쓰는 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며 “공적인 일을 하기 위해 기자가 된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이 가치 절하될 필요는 없는데, 괴롭힘이 반복되면 스스로 비하하거나 위축되는 경우가 있더라”고 전했다.
김창욱 교수는 “기자들은 자신이 당하는 괴롭힘을 조직 내부에 알려도 될 사안인지 아닌지를 감지하는 일종의 ‘선’을 내면화하고 있다”며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론사 조직 차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폭력을 당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또 기자들 스스로도 괴롭힘을 일종의 심리적 산재, ‘업무상 재해’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 의학 서비스 구체적으로 마련해야"…언론단체 대응도 필요
다만 인식에서 머무를 순 없다. 연구자들은 괴롭힘의 대상이 된 기자에게 조직 차원에서 여러 부분에 걸쳐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요한 조치로는 △예방 △모니터링 △위기 대응 △회복 등이 언급됐다. 함께 연구를 진행한 신우열 경남대 미디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온라인 괴롭힘 공격에 대한 조직 내부 인식을 개선하거나 예방 지식을 쌓는 일은 장기 과제로 진행돼야 하고, 온라인 괴롭힘이 유발될 만한 상황을 감시하는 모니터링은 기술적인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지금 당장 주목할 것은 위기 대응과 회복의 영역이다. 특히 언론사들이 법률적, 의학적 차원의 서비스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피해를 신고할 소통 창구를 일원화하고, 고소를 진행할 경우 고소인 조사나 법정 증언 시에 법률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게시물 삭제와 같은 법적 대응이 이뤄짐과 동시에 전문적인 정신건강 지원도 필요하다고 연구자들은 강조했다. 토론에 참여한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언론단체들의 공동의 대응이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소규모 언론사인 경우에는 더욱 피해가 많다고 하더라. 한 언론사에서 할 게 아니라 전면적으로 아우를 수 있는 어떤 구조화가 이뤄져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우열 교수는 “저희가 온라인 괴롭힘을 당하는 기자님들과 얘기했을 때 일부 증오 같은 게 보였다. 독자들을 비합리적인 존재로 본다든가 미디어 리터러시가 떨어지는 사람이 그런 댓글을 단다는 식의 독자를 같이 미워하는 경향이 있더라”며 “옳고 그름,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독자와의 거리감이 생기면 과연 우리 저널리즘이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런 고민을 같이 하며 이 문제를 접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렇듯, 여성이 겪는 차별이 공론장에 꺼내지면 ‘남성들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자리에 대해서도 같은 시선이 존재했다. 토론에 참여한 은사자 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여성 기자가 겪는 괴롭힘을 토론하는 것은 ‘남성 기자는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며 “다만 구조적으로 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 기자가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폭력이었으나 폭력으로 명명되지 못했던 것을 밝혀내고 이름을 붙이고 나면, 문제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 역시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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