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쪽 중 미디어 공약 3개 뿐… 차기 정부 정책 기대·우려 공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발언으로 본 향후 5년 간의 언론 정책]
위기 처한 지역언론 공약도 없어… "큰 고민 없었던 것 같기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 구성 등 정권 인수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차기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당선인의 일거수일투족과 함께 주요 정책 방향은 어떨지,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언론계도 예외는 아니다. 당선인이 향후 5년간 어떤 언론관을 갖고 어떤 언론 정책을 펼지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다만 당선인의 후보자 시절 발언과 공약 간 온도 차가 존재하면서 기대뿐만 아니라 우려 역시 높은 상황이다.
자율 규제의 보장?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의 압박?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종종 ‘언론중재법’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지난달 15일 기자협회 주최 대선 토론회에선 “민주당 정권의 언론 정책은 낙제점”이라며 “언론중재법으로 반정부적인 비판 언론에 재갈 물리기를 시도해왔다”고 비판했다. 공약집에도 관련 개혁 방안을 담았는데, 현 정부 들어 가짜뉴스 규제 등을 핑계로 비판 언론을 억압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려 시도했다면서 자유로운 언론 환경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가짜뉴스’나 악의적 왜곡 등의 문제는 법이 아닌 자율 규제를 통해 해결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모든 조직화된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했다.
반면 윤 당선인은 “진실을 왜곡한 기사는 사법절차를 통해 확실한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자주 했다. 지난달 12일 유세 도중 한 발언이 대표적인데, “언론 보도의 진실성에 대해선 우리나라에서 손해배상 소송이라든가 이런 사법 절차를 통해 허위보도에 확실하게 책임 지우는 일을 한 번도 해온 적이 없다”며 “진실을 왜곡한 기사 하나가 언론사 전체를 파산하게도 할 수 있는 강력한 시스템”을 언급했다. 또 “언론사가 자진해서 과오를 인정했을 땐 1면에 같은 크기로 보도” 등 언론중재법과 결이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같은 발화자에게서 자율 규제 공약과 진실을 왜곡한 언론사는 파산시키겠다는 말이 동시에 나오면서 언론단체들에선 “분열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향후 윤석열 정부의 언론 정책이 문재인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문재인 정부에선 법 개정을 통해 혐오나 허위 사실 유포를 가중 처벌하겠다는 방식이었는데, 윤석열 정부는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더 강하게 압박하지 않을까”라며 “법의 잣대로 보면 사실적시든 허위사실이든 이미 강력한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자율 규제를 보장해주고 그게 실천이 안 됐을 때 행정 규제를 적용하는 건 맞는 방식”이라며 “다만 자율 규제가 잘 될 수 있도록 행정 규제가 얼마나 그 권한을 위임해주느냐가 핵심”이라고 했다.
한편에선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발언이나 공약을 보면 언론과 관련해 준비도 안 돼 있고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이율배반적이거나 모순적인 얘기를 하긴 했는데 예단하기보단 시간이 지나면서 (진짜) 생각이 뭔지를 봐야할 것 같다. 문제는 주변 사람들인데, 언론을 이용하고 언론과 갈등 국면을 조장했던 사람들이 당선인 주변에 많이 포진돼 있어 그 부분이 제일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우려스러운 언론관”…발전적 관계 만들어나가야
언론에 대한 윤 당선인의 이해나 관심 부족은 그동안 여러 측면에서 드러났다. 거리 유세에서 “정치 개혁에 앞서 언론노조를 먼저 뜯어 고쳐야 한다”거나 “인터넷 매체 말고 메이저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라”고 말한 건 단적인 예다. 340쪽에 달하는 공약집에 미디어 개혁 공약은 고작 3개가 담겼다거나 극심한 생존 위기에 처한 지역 언론에 대한 공약은 전무하다는 사실이 향후 윤석열 정부 또한 언론에 무관심할 것임을 가늠케 한다.
윤석열 마크맨이었던 한 기자는 “다른 마크맨들도 그럴 텐데 윤 후보 개인에 대해 취재가 된다거나 그런 느낌은 많이 못 받았던 것 같다. 대부분 참모들이 알아서 처리했고 후보 인터뷰가 나가도, 캠프에서 부인하는 일이 꽤 있었다”며 “게다가 비판적이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에 대해선 자기를 공격하는 관점으로 보는 것 같더라.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언론관에 문제가 있어 보이는 발언이 꽤 있어 우려가 되는 건 사실인데, 언론의 지적에 대해 좀 더 넓은 시각과 마음으로 대응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다행히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주 1회 정도씩은 기자들과 기탄없이 만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청와대 한 출입기자는 “소통 측면에서 보면 현 정부가 최악이었기 때문에 윤석열 정부는 조금 더 낫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기대가 있다”며 “정치는 언론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건전한 비판과 감시, 견제를 할 수 있는 발전적인 관계를 잘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3개 정부를 거쳤던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도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고 했는데 기존의 춘추관 운영과 달리 집무실과 프레스센터가 크게 떨어지진 않게 할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상으로 운영하니 일관성을 지킬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 토론회 등을 기피해왔던 걸 보면 실질적으로 (자주 소통할 것인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대통령이 국정을 잘 하면 기자들과 자주 대화한다는 도식적인 의미는 필요하지 않다”며 “이슈나 중대한 상황이 벌어질 때, 국민적 관심사가 있을 때 수시로 러프하게 기자들과 소통하면 된다. 무엇보다 국민들 갈등이 워낙 고조돼 있기 때문에 국민통합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국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실천에 옮겼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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