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후 20여일의 시간이 흘렀다. 국제사회에선 러시아를 고립시키고자 금융제재와 수출제한 등을 결정했고,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직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인접 국가인 독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독일 연방정부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수입을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해 2012년부터 야심 차게 준비했던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 2’(Nord-Stream 2)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다. 또한 에너지 집약적 산업인 건설, 화학, 철강 산업의 원자재가격 상승과 불확실성 상승, 밀 공급 제한 등의 경제적 위험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여러 경로를 통해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결정했기에 외교적으론 독일과 러시아 간 정치적 갈등이 형성될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계에선 친러성향인 전 슈뢰더 독일연방총리가 퇴출당한 사건도 있었고, 경제분야뿐만 아니라 스포츠계를 포함하여 사회 전반에 걸쳐 반러정서가 확대되고 있다.
강제 침공이 시작된 후 빠른 속도로 우크라이나를 탈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위한 입국 간소화 절차를 시작했고, 그중 일부는 이제 독일로 유입되고 있다. 3월 초까지 이미 200만명의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이 유럽연합으로 들어왔고, 향후 최소 300만명 이상이 더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 회원국 중 독일은 2015년 북아프리카·중동 출신 난민을 대거 수용했었기에 이번에도 많은 피란민이 유입될 것은 확실하다. 3월 초, 독일에서 임시적으로 난민자격을 받고자 등록한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6만5000명으로 집계되지만, 독일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등록하지 못한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4~5배는 더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
독일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도 일부 확보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등을 거쳐 독일로 들어오고자 하는 피란민들에겐 도이체반이 무료로 기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로 들어온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취업 활동과 학교 수업 참여가 보장되고, 의료혜택도 받을 수 있다. 상황적으로는 2015년 북아프리카·중동 출신 피란민들의 유입과는 다르게 이미 정책이 마련된 상황이기에 독일정부의 유연한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아직 독일 연방정부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피란민들은 지방정부와 사회단체, 기업의 활동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철로를 이용해 1일 약 1만여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도착하는 베를린 중앙역에선 베를린 주정부와 경찰, 소방대 및 시민단체가 협력하여 이들을 수용하고 있다. 뮌헨에선 한 호텔이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객실을 제공하고 있고, 프랑크푸르트나 뉘른베르크 등의 도시에서도 종교단체와 시민단체, 개인들이 사재로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개인 활동가들이 시작한 피란민 숙소제공 활동 ‘#Unterkunft Ukraine’는 14만명이 참여하여 32만개가 등록되어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한계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현재 유입되는 피란민이 여성과 노약자, 어린이와 같이 취약자들이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우려되고 있다. 지방정부들도 수용에 벌써부터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작센주의 경우 베를린에 도착한 우크라이나인들을 일부 수용하고 있는데,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수용시설이 한계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중앙정부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것이다.
2015년, 독일 사회가 피란민을 받으면서 겪었던 불안은 준비되지 않았던 시민사회와 정책 간의 괴리로 인한 문제였다. 하지만 올해는 시민사회가 먼저 대응하고, 정책은 뒤처진 양상이다. 물론 정치권에서도 2015년의 경험이 있었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 결정이 늦으면 늦을수록 더 힘든 시간을 겪어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제 독일 시민사회의 움직임에 이어 정치권이 답을 마련해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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