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부터도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더니, 어느 지역, 어떤 투표함이 먼저 열렸느냐에 따라 개표 상황도 반전을 연출했다. 마치 초보다 작은 단위로 승부를 가리는 스포츠를 관람하듯, 유권자들도 뜬눈으로 밤을 샜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적은 표 차이로 대통령이 결정났다. 24만7077표, 0.73%p 차이.
문제는 깻잎 한 장 차이에 숨겨진 분열이다. 이번 대선에서 지역 구도는 부활했고, 세대 갈등은 심화했다. 여기에 남녀갈등까지 더해져, 그 어떠한 선거보다 더 촘촘한 균열이 그 이빨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나타난 균열이 한두 번 손으로 넓게 찢은 색종이 정도라면, 이번 선거에서는 가위로 잘게 잘라놓은 듯한 구도가 되었다.
선거에서 드러난 균열 구조, 이번 선거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선거 전 실시한 여론조사 자료(18대~20대 대선)로 후보자에 대한 지지를 성, 연령, 지역으로 분석해봤다. 분석 결과, 18대 대선은 거주지를 알면 절반은 그 사람이 누구한테 투표하는지 알 수 있는 선거였고, 19대 대선은 나이를 알면 10번 중 6번은 지지 후보자를 맞출 수 있는 선거였다. 18대 대선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균열인 지역주의를 잘 보여주는 선거라면, 탄핵 후 치러진 19대 대선은 지역에 관계없이 연령에 따라 균질적인 투표행태를 보여줬다.
20대 대선은 18·19대 선거처럼 간단한 해석이 가능하지 않다. 가장 큰 변수는 지역. 지역 구도가 다시 18대만큼 중요한 균열로 떠올랐다. 선거 내내 세대포위론, 세대포용론을 이번 선거를 규정하는 언어로 사용한 양 당의 노력이 무색했다. 두 후보자 모두 상대방의 텃밭이라 여겨지는 호남과 대구경북에서 역대급 성적을 내긴 했지만, 애초 목표했던 호남 30%, 대구경북 30% 득표는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
또 새로운 균열도 나타났다. 지금까지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던 성·연령, 지역·연령이라는 새로운 균열 구조. 같은 20대라고 해도 거주지에 따라 지지 후보가 달랐고, 같은 연령대라도 성별에 따라 투표 행태가 상반됐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 예측이 더 어려웠던 이유다. 기존에는 지역과 연령 정도로 나눠보면 됐는데, 이제는 지역과 연령, 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하고 있는 지점은 성·연령 균열이다.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의하면 20대 이하 남성은 58.7%가 윤석열 후보를, 여성은 58%가 이재명 후보를, 30대 남성은 52.8%가 윤 후보를, 여성은 49.7%가 이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예측됐다. 대선에서 같은 연령대의 남녀 표심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인 건 처음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로 갈린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잠재돼 있던 남녀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된 것인지 원인 진단보다 중요한 게 있다. 이후 나타난 서로에 대한 혐오와 공고해진 갈등구조가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준엄한 심판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0.73%p에는 더 빽빽한 갈등의 구조가 들어있다. 대선을 치르며, 대선 결과를 보며 유권자들은 이미 촘촘한 균열을 눈으로 목격했고, 한 번 드러난 균열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 0.73%p는 작은 차이가 만들어낸 승부가 아니라, 수많은 균열이 만들어낸, 아주 가느다란 승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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