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가 자신 혹은 가까운 이가 생명을 위협받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겪는 것이라면 (기자들이 겪는) 2차 트라우마는 그런 얘기를 자세히 구체적으로 듣고 옮기면서 마음, 인식구조에 변화가 생기는 일이다. 거리를 두려 해도 사람이기 때문에 영향을 안 받을 순 없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특임이사는 14일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과 구글 뉴스 이니셔티브(GNI)가 공동 주최한 ‘코로나ing 언론인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프로젝트 1.0’ 라운드테이블에서 이같이 밝혔다. 사건·사고나 재난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트라우마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언론인들의 심리회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그는 이날 공개된 ‘언론인·뉴스룸을 위한 감염병 스트레스 마음건강지침’과 관련해 “언론인도 사람인데 언론인 직분은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길 꺼리는 특성이 있다. 고통이 심할 땐 말해도 되고 전문가 도움을 받아도 괜찮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취재현장에서 기자가 자신을 위해, 취재원에게 실천할 수 있는 안정화 기법도 담았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사회 모든 영역을 위축시킨 상황. 모두가 기피하는 현장에 가야하고 또 사람을 만나야만 하는 언론인들은 고충을 겪고 있다. 언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까지 겹친 가운데 이들을 보호하고 저널리즘을 유지하는 방안으로써 언론인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매뉴얼을 제안하는 자리가 국내 처음으로 마련됐다. GNI의 제안에 언론재단이 응했고 전문가 8인이 참여한 협의체가 약 6개월의 준비 끝에 도출한 결과다. 협의체 좌장을 맡은 선정수 뉴스톱 기자는 “언론계를 향한 따가운 시선에 참여를 망설였는데 현장을 누비는 젊은 언론인들의 고충을 알게 되며 이들 하나라도 더 보호할 수 있다면 값진 기획이 되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며 “사회 전방위를 비판하지만 언론 종사자들은 ‘우리가 이런 상황’이라고 하진 못한다. 경영진들이 ‘나 퇴직할 때까지 회사 안 망하면 되지’란 생각 말고 건강한 저널리즘 구현을 위해 기자들의 목소리를 잘 살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고 했다.
이에 따른 ‘언론인 스트레스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 12개항’엔 “뉴스룸은 취재구성원을 위한 코로나 취재 대응 및 스트레스 대응 매뉴얼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온라인 트래픽 성과 중심의 업무가 가중되어선 안 된다” “백신휴가나 업무 배정 등 모든 뉴스룸 내 직무/직급/고용형태에 따른 차별이 발생해선 안 된다” 등 내용이 담겼다. 원칙 천명에서 나아가 뉴스룸 관리자와 구성원이 알아야 할 구체적인 지침 역시 포함했다. 뉴스룸 관리자에게 감염병 관련 사전교육, 현장취재와 대면인터뷰 필요성 사전검토, 보호장비 제공, 상담지원 방안강구, 간접피해도 치료비 등 지원, 사전근무조 편성과 업무조정, 회식 자제 등 17가지를 제안했고, 뉴스룸 구성원엔 취재 전·중·후 주의사항 14가지, 원칙 7가지를 제시했다.
매뉴얼 제작에 참여한 김정원 MBC 기자는 “온라인이 24시간 365일 돌아가고 일이 터지면 회피가 아니라 중심으로 들어가야 하는 언론사 특성, 대선·우크라이나 등 계속 터지는 큰 뉴스를 따라가려다 보니 발발 후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제대로 대응방안을 갖추지 못한 언론사가 많은 듯 싶다”며 “잘 만들든 못 만들든 일단 회사 차원에서 매뉴얼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매뉴얼이 있으면 구성원 입장에선 문제제기를 할 근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일반 기업에선 직원들 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실제 영화비 제공 같은 유치해 보이는 지원이 프로덕트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많은 연구가 있다”며 “포털 중심 환경에서 언론인들이 굉장히 몰리고 있는데 저널리즘 퀄리티 향상을 위한 중요 변수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한 투자, 구성원을 잘 보듬는지 여부라고 본다”고 했다.
범 언론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 역시 명시했다. 박아란 언론재단 책임연구위원은 낮은 언론 신뢰도와 위축된 기자들 분위기를 전하며 “팬데믹 상황에서 국민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으려면 언론이 정보를 신속 정확하게 보도해야 하고 이에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을 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취재 및 보도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팬데믹 상황 언론인 필수인력 인정 및 보호대책 준비를 정부가 해야한다는 제언이다. 디지털 플랫폼엔 정확한 언론보도 노출을 위한 협조와 허위정보 확산 차단을 위한 팩트체크기관과 협력, 언론단체들엔 각 언론과 긴밀한 협의와 팬데믹에 대응한 가이드라인 마련 및 배포 역할을 제안했다.
방역 정책이 확산방지에서 일상회복으로 전환되는 현 시점에서 모더레이터를 맡은 양영은 KBS 기자, 연구 과정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김판 국민일보 기자는 보강할 부분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포커스 그룹 인터뷰 참여했을 때만 해도 ‘걸리면 어떡하지’가 화두였다면 지금은 ‘걸렸을 때 언론사 조직들이 적절한 지원을 해줄 수 있는가’인 상황”이라며 “감염을 상수로 두고 언론사 등의 대책마련,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구글코리아 측은 이번 결과물을 번역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타국 언론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김민성 구글뉴스랩 부장은 “버전 1.0에 담긴 많은 이야기는 언론사 구성원들이 조직 안 동료들을 보듬으며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며 “가이드라인으로 대화를 시작해서 조직에 맞는 최선을 찾는 씨앗이 되길 바란다. 나아가 좋은 동료를 잃지 않고 언론인의 역할을 더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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