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방 소멸' 대책 5년의 교훈

[기고] 정윤성 JTV전주방송 기자

이 기고는 정윤성 JTV전주방송 기자가 2021년 1년 동안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연구한 일본 정부의 지방 소멸 대응방안을 바탕으로 작성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2014년 5월 일본창성(創成)회의가 내놓은 이른바 ‘마스다 리포트’는 2040년까지 일본의 896개 지자체가 소멸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2014년에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은 ‘지방 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지방 창생’(地方創生)을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출생률을 1.8명까지 끌어올려 2060년에 1억명 수준의 인구를 확보한다는 인구 비전(인구 목표)을 내놓았다. 중앙정부의 인구 비전에 맞춰 전국의 자치단체들도 각각의 인구 비전과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종합 계획을 수립했다.

정윤성 JTV전주방송 기자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추진된 지방 창생 1차년도 사업에 대한 평가는 후하지 않다. 우선, 첫째 이 사업이 중앙집권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앙정부가 지자체의 실적을 평가해서 예산을 배분하는 전형적인 하향식으로 추진됐다.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사업을 스스로 평가할 수 있도록 각 사업마다 계량화된 목표(Key Performance Indicator)를 세우도록 했다. 그 결과,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단기적인 사업과 평가받는 데 용이한 사업이 만들어졌다. 반면, 지역에 꼭 필요해서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될 사업은 찬밥 신세가 됐다.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것으로 사업 목표가 변질돼 버렸다.


둘째, 지방 창생은 추진 과정에서 지방의 ‘내발성’(內發成)을 살리지 못했다. ‘지방 창생’의 밑그림이라고 할 수 있는 인구 비전, 종합 계획을 남의 손을 빌려 수립했다. 홋카이도(北海道)의 경우, 전체 기초지자체의 63%가 인구 비전 또는 종합 계획 수립을 용역업체에게 떠맡겼다. 지역 구성원들이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 해법을 고민하는 ‘생산적 진통’이 실종됐다. ‘지방 소멸’이 ‘우리’의 문제라는 ‘당사자 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쳤다.


정부는 최근 지방 소멸 지역 대책으로 ‘지방 소멸 대응기금 1조원’ 사업을 발표했다. 이 사업 역시 지자체가 계획을 세우면 중앙정부가 평가해서 예산을 배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 곳에 1년에 최대 160억원 밖에 되지 않는 예산을 중앙정부가 심사해서 선심 쓰듯 나눠 주는 모양새다. 예산 규모, 배분 방식은 정부의 의지를 의심케한다. 지역의 문제를 진정성을 가지고 나의 일처럼 고민한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라도 지방을 살리겠다는 중앙정부 차원의 담대한 선언이 나와야 한다. 일본의 지방 창생은 많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방 살리기’를 국가적 과제로 채택해서 국민적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에게도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일부가 아니라 ‘지방 살리기’에 초점을 둔 마스터플랜이 필요하다. 농어업을 비롯해 공익적 역할을 하는 분야에 획기적인 소득 보전 대책 등이 담겨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있어야 가능하다.


자치단체에게는 ‘민간’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민간과 연계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민관(民官)이 결합할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짜내서 지역에 역동성을 불어넣어야 한다. 민간의 순발력,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지역에 더 많은 기회와 가능성이 싹틀 것이다. 진정한 지역 활성화 스토리는 정부 보조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민간을 새로운 ‘공공’(公共), 지역 발전의 주체로 받아들여야 한다.


2020년 한국의 출산율은 0.84명으로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출산장려금을 통한 인구 유치는 인구통계의 분식(粉飾)을 가져올 뿐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지방 살리기’는 가난한 지방에 돈 몇 푼 던져주는 사업이 아니다. 지방과 농산어촌의 가치를 재발견해서 이를 바탕으로 도시와 농촌, 서울과 지방, 고향(故鄕)과 출향(出鄕)의 관계를 재정립해가는 국가적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서울과 도시를 중심으로 서열화되고 왜곡된 가치를 바로잡아서 우리 사회를 성숙시키고 공동체를 복원하며 인생을 즐기는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가는 대전환이 있을 때 ‘지방’은 살아날 것이다.

정윤성 JTV전주방송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