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일 기준 이레째 이어지고 있다. 당초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군이 나흘 안에 수도 키예프를 함락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결사항전과 유럽연합 등의 병력 지원으로 사태 장기화가 전망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국내 언론사들도 속속 취재진을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로 파견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연합뉴스와 KBS, MBC, SBS, YTN이 취재 기자를 보낸 데 이어 최근엔 일부 종합일간지와 종합편성채널에서도 기자들을 급파하는 상황이다.
연합뉴스와 KBS는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현지에 특파원을 파견한 곳이다. 이율 연합뉴스 베를린 특파원은 “우연히 KBS 베를린 특파원과 같은 날 폴란드에 도착했는데, 그날이 주폴란드 한국대사관이 프셰미실에 임시사무소를 차리기 하루 전날이었다”며 “원래는 2박3일 사전답사 차원이었는데 철수하는 날, 돈바스 분리병합 문제가 불거지며 하루 더 남으라는 지시가 내려오고, 그렇게 2주를 여기 있었다. 옷도 없고 양말도 없고 섭외한 대학생 분도 나흘째 되는 날 돌아가서, 그 이후론 계속 혼자 다니다 28일에야 로마 특파원과 교대를 했다”고 말했다.
국내 기자들은 대부분 피란민들이 몰려드는 폴란드 동남부 국경도시, 프셰미실을 거점으로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메디카 국경검문소와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프셰미실 중앙역은 기자들의 주요 취재 장소다. 임상범 SBS 기자는 “우크라이나가 지리적으로 여러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좀 특별하다”며 “범 슬라브족인 데다 특히 폴란드 동남쪽과 우크라이나 서쪽 사람들은 혈연관계도 많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해서, 난리가 나면 폴란드로 넘어오는 게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너무 몰리다 보니, 지금은 연고도 없고 낯설지만 루마니아나 헝가리로 넘어가는 피란민들도 많다”고 말했다.
피란민과 자원봉사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파견한 특파원들까지 몰리며 인구 6만명의 소도시 프셰미실은 현재 굉장히 혼잡한 상황이다. 시내에 있는 호텔과 여인숙은 모두 동이 났고, 대부분 하루 단위로 숙소를 옮겨 다니고 있다. 특히 한국대사관이 임시사무소를 차린 호텔은 국내 취재진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임에도 경쟁이 치열해, 대체로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 하고 있었다. 이율 특파원은 “숙소를 못 잡아 계속 짐을 들고 다니니 로이터나 다른 외신 기자들이 피란민인 줄 알고 몇 번 멘트를 따려고 한 적도 있다”며 “끼니를 챙길 시간도 내기가 쉽지 않다. 국경을 취재할 땐 인근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대개 점심을 거르고 오후 4시쯤에야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8시간 시차가 나며 기자들은 제작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한창 업무 얘기가 나오는 오전 시간대가 폴란드에선 새벽 2~3시라 쪽잠 위주로 버티는가 하면, 저녁 뉴스 시간이 현지에선 오전이라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기자들은 전했다. 신현정 연합뉴스TV 기자는 “한국과 연결하는 시간이 현지에선 아침 시간대라 저희가 그 전에 뭘 취재해서 반영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며 “연결을 하고 난 뒤에 취재 포인트를 돌아다녀야 다음날 쓸 게 생기는, 흐름이 바뀐 상황이 됐다. 게다가 인터넷도 원활하지 않아 서울에 있는 PC를 원격으로 접속해 기사를 올려야 하고, 올리더라도 한국에선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니 최대한 빨리 마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와중에도 기자들은 역 대합실을 가득 메운 자원봉사자들에게서 큰 감동을 느끼고 있었다. 신현정 기자는 “검문소 앞에서 피란민들에게 식료품을 제공해준다고 사비로 이것저것 사온 분을 인터뷰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난민캠프서 초등학생 자원봉사자가 했던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잘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마음씨가 되게 예뻤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고 급하게 폴란드로 넘어왔던 피란민들이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며 불안감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기자들은 전했다. 임상범 기자는 “파견 초반엔 방탄조끼를 입고 방송을 하면 ‘오바한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해서 너무 과했나 생각했는데, 실제 전쟁이 난 후엔 그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사라졌다”며 “우크라이나 서쪽이 아직까지 안전하긴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이 개입하면 나토 국경까지 갈 수 있다’고 말한 상황이라 여기도 정말 전장이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낮은 수준의 긴장감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벨라루스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회담이 결과물 없이 종료되면서 전쟁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승윤 YTN 기자는 “회담 장소나 협상단 면면, 또 요구 사항을 보면 과연 전쟁을 멈출 생각이 있었는지 러시아의 진정성에 의문이 간다”며 “이번 전쟁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러시아군이 대단위 병력을 데려왔기 때문에 발을 빼기가 쉽지 않고, 국가의 자존심과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명운이 부각되는 상황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항전 의지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이승윤 기자는 “프셰미실 중앙역에서 한 남자가 저희 중계차 있는 곳으로 와서 말을 걸었다. 피란민들과는 반대로 기차를 타고 우크라이나에 입대하러 들어가는 분이었다”며 “기자로서 이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가 뭘까 고민하다 가족들에게 보낼 메시지를 받아서 전달을 해줘야겠다, 생각했다. 아들에게 ‘(우크라이나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을 보면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의지를 느꼈고,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면서 전쟁의 배경과 진행 상황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가 도대체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지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들을 참고하면 좋다.
-매일경제신문: 도대체 푸틴은 왜 이러는 걸까? 5분 만에 읽는 우크라 사태 [뉴스 쉽게 보기]
-경향신문: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나…러시아 시선으로 본 ‘포스트 냉전’
-서울경제신문: 우크라사태, 왜 지금인가 …가스관 쥔 러, 에너지 무기화로 美·유럽 분열 노려
우크라이나 사태의 진행 상황이 궁금하거나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면, 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역사적 관계를 알고 싶다면 아래 기사를 참고하면 좋다.
-중앙일보: LIVE : 러시아,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긴장된 위험에서 전쟁까지
-연합뉴스: [우크라 침공 Q&A] 협상·총공세 혼란스러운 전장
-조선일보: “같은 뿌리” “민족·종교·언어 달라”… 러·우크라 악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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