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터 식사까지 '폐쇄루프' 속에서… 베이징 시내보다도 비쌌던 물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취재기] 김배중 동아일보 기자

코로나19 이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은 팔을 쭉 뻗어도 선수에게 닿을 수 없을 만큼 거리가 생겼다. /김배중 동아일보 기자 제공

1월31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국제공항. 방역복을 입은 공항 관계자가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앞두고 친절하게 “마스크 내리세요”라는 말을 건넬 때까지도 실감이 안 났다. 눈 사이를 파고들만큼 콧구멍 깊숙한 곳으로 두 번, 헛구역질이 날만큼 목구멍 깊이 세 번 면봉이 드나들고 나서야 눈물 콧물 쏟으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사한 관계자가 “어서와, 이런 데는 처음이지?”라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듯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 상황에서 열리는 두 번째 올림픽. 코로나19는 기어코 내 인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올림픽을 준비하던 선배의 갑작스러운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전해졌고, 출국 2주도 안 남기고 현장 ‘대타’가 됐다.


평소 같으면 올림픽에서 급히 대타가 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20년 열릴 예정이던 도쿄 올림픽이 1년 미뤄져 열릴 때도 취재진 변경이 어려워 그 사이 스포츠부에서 타부서로 발령 난 종합일간지 취재기자들이 ‘올림픽 등록카드(Pre-Valid Card·PVC) 소지자’라는 이유로 올림픽 현장으로 투입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사이 코로나19 문제라면 출국 8일 전(평일 기준)까지 취재진 변경이 허용된다는 규정이 새로 생겨 올림픽 직전이라도 대타가 되는 게 ‘있을 수 있을 일’이 됐다. 국내에서 새 규정의 첫 수혜자(?)가 됐을 뿐이었다. 2018 평창 겨울 올림픽을 시작으로 2020 도쿄 여름 올림픽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을 맞게 됐다.

지난 16일 중국 베이징 서우두 실내경기장에서 최민정 선수가 쇼트트랙 여자 1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직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김배중 동아일보 기자. 김 기자는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피로회복제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김배중 동아일보 기자 제공


코로나19 시국 속에 열리는 두 번째 국제대회인 만큼 개최국인 중국의 준비는 철저했다. 도쿄 대회 당시 전산오류 등이 잦아 일본 당국으로부터 입국 승인을 통보받지 못한 사람들도 일단 일본에 도착한 뒤 올림픽 관계자라는 걸 확인하면 입국이 허용됐지만 베이징에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때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휴일에도 협조를 해줬고 국내 출국 단계서부터 서류구비 여부를 철저히 확인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 가동된 ‘폐쇄루프(閉還)’도 비교적 철저하게 지켜졌다. 베이징에 내린 순간부터 공항 내 폐쇄루프 구역으로 안내돼 일반인과 다른 입국 절차를 밟았다. 시력이 안 좋아 현지 가이드가 필요했던 송승환 KBS 해설위원(올림픽 개폐회식 해설)도 가이드가 폐쇄루프 구역으로 들어올 수 없어 발길을 돌렸다. 경기장, 숙소 등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곳에는 2m가 넘는 담장, 철창이 세워졌고 공안들이 경비를 섰다. 베이징의 시내 모습은 폐쇄루프 밖을 오갈 수 있는 셔틀버스, 방역택시 및 기차를 탈 때 ‘창밖’으로만 볼 수 있었다.


취재뿐 아니라 식사 등 모든 걸 폐쇄루프 안에서 해결하다보니 고충이 만만찮아졌다. 우선 평소에도 악명 높던 올림픽음식이 이번 대회에서 가장 피부로 와 닿았다. 원래 올림픽 식당 음식은 맛없고 비싸다. 2018년 평창, 2021년 도쿄 때도 그랬다. 올림픽을 위해 임시로 마련된 공간에서 음식을 조리하니 이해가 된다. 입에 안 맞으면 올림픽 구역 밖으로 나가 해결할 수 있어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도쿄 대회 당시에도 외부 음식점에서 테이크아웃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메인미디어센터(MMC), 각 경기장 베뉴미디어센터(VMC) 내 식당, 호텔 내 방역식당에서만 식사가 가능했다.


저렴하고 괜찮다던 현지 맛집은 고사하고 한국에서도 흔히 다닌 맥도날드, 스타벅스까지 창밖 너머로만 봐야 하는 처지란…. 잘 챙겨먹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4kg이 빠졌다. 십수 년 전부터 국제대회를 취재한 선배들 입에서 참다 참다 “올림픽이 아니라 감옥에 온 것 같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폐쇄루프 내 다른 물가도 베이징 시내에 비해 턱없이 비쌌다. 도쿄 대회 당시 비싸기로 악명 높은 택시문제에 대해 당시 조직위는 일정금액의 쿠폰을 배포해 해결했지만 베이징 시내보다도 최소 3배 이상 비싼 폐쇄루프 내 택시문제에 대해 이번 조직위는 수수방관했다. 서우두 실내 경기장과 300m 떨어진 쇼트트랙 훈련장을 가기 위해 기본요금 60위안(한화 약 1만1300원)짜리 택시를 울며 겨자먹기로 타야했다. 500ml짜리 콜라, 사이다(이상 5위안·942원)가 3000원 전후였던 평창, 도쿄에 비해 저렴했던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폐쇄루프 올림픽의 장점도 있었다. 도쿄 대회 막바지 국내 취재진 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이곳에서 모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폐쇄루프 내 모든 사람들이 매일 PCR 검사를 받고 음성이 확인돼야 폐쇄루프 안에 머물 수 있기에 가능했다. 대회 초반 입국자 확진 외에 중반부터 코로나19 이슈가 쇼트트랙·피겨 경기장에서 생긴 개최국 편파판정, 도핑논란을 넘어서지도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코로나19 시대에 좋은 선례를 남긴 건 부정할 수 없다.


취재진들도 안전한 취재를 위한 해답을 찾은 듯 했다. 도쿄 대회 당시 일부 취재진의 방역수칙 위반 취재가 도마에 오르기도 했지만 두 번째 올림픽에서 불상사는 없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출입인원 제한 등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해 노력했다. 타국 취재진과의 기 싸움에서도 각자 익힌 어학실력을 십분 발휘해 똘똘 뭉쳐 맞섰다.

김배중 동아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