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넘어 '혐중' 확성기 된 언론

[컴퓨터를 켜며] 김고은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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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은 기자협회보 편집국 차장

‘눈 뜨고 코베이징’. 이번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의 심정을 이보다 절묘하게 담아낸 표현이 있을까. 올림픽 개막과 함께 우리 국민이 가장 먼저 맞닥뜨린 감정은 감동도, 환희도 아닌 분노였을 것이다. 개막식 한복 논란에 연이은 쇼트트랙 판정 시비는 안 그래도 심상찮은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부었다. 개최국 중국을 향한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불똥은 여러 곳으로 튀었다.


그 중엔 안현수도 있다. 대한민국 쇼트트랙의 전설이었고, 러시아에 귀화한 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러시아에 4개의 메달을 안기며 러시아의 영웅이 된 빅토르 안. 그가 이번엔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 기술코치로 대회에 참가했다. 지난 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이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실격 처리된 뒤 중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면서 비난의 화살은 ‘배신자 안현수’에게도 향했다.


편파판정에 대해 충분히 얘기할 수 있다. 판정을 내린 심판은 영국 출신이지만, 중국의 로비 가능성도 있고, 결과적으로 중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가져갔으니 중국이 미울 만도 하다. 그러나 언론이 덩달아 동요하거나 흥분해선 곤란하다. 아무리 ‘그냥 중국이 메달 모두 가져가라고 하자’는 심정이어도 그 기분은 마음의 소리로 머물러야 한다. 강한 반중 정서에 편승해 언론이 감정을 배설하는 장이 되어선 안 된다. 그것이 최소한의 품위이고 윤리다. 중국 선수가 4년 전 한 말을 마치 어제의 것인 양 보도하며 ‘어그로’를 끌고 ‘커뮤니티 여론’을 여과 없이 옮기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반중’이 ‘혐중’으로 번지는 데 언론의 책임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안현수 코치와 그의 가족을 향한 분노가 정당한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9일 다수의 언론은 안 코치가 대한민국 선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영상이 화제라고 보도하면서 “선배놀이 그만”, “가증스럽다” 등의 누리꾼 반응을 그대로 전했다. 한 언론은 해당 기사에서 “그의 가족은 한국에 체류하며 공동구매로 돈을 벌고 있다”고 전혀 연관 없는 사실을 적시한 뒤 “국적을 버리고 간 그의 행보에 실망감과 분노를 표출하는 여론이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안 코치가 한국 선수의 인사를 받고, 그의 아내가 자신의 SNS에 온라인 쇼핑몰 오픈을 알리고, 딸과 함께 “담담한 일상”을 보내는 등의 일거수일투족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이 모든 게 “국적을 버리고 간” 안 코치의 ‘업보’이니 감당해야 할까.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에도 탁구를 비롯해 다양한 종목에 귀화 선수가 있다. 그들 역시 조국에서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까. 동계올림픽의 쇼트트랙은 하계올림픽의 양궁과 곧잘 비교되곤 한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양궁 경기에 참여한 나라 중 7개국의 사령탑이 한국 출신이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세계로 뻗는 한국 양궁’이었다. 어떤 언론도 조국을 등졌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청년 세대의 반중 정서가 강한 것은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고,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그런 경향은 더 강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 그렇다 해도 언론이 확성기 역할을 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높은 조회수와 ‘사이다’라는 반응에 취해 최소한의 품위와 원칙마저 잃는다면 언론은 ‘벌거벗은 임금님’에 다름 아닐 것이다. 많은 언론이 반중 정서에 편승한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한 바 있다. 그 잣대 그대로 자신을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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