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메사추세츠…
최근 미국 주정부들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해제한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이달 들어 마스크 의무화 해제에 합류한 주만 11곳에 달한다. 그동안 필자가 거주하는 텍사스주를 비롯, 공화당 집권주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거부하거나 해제한 경우는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방역조치를 고집하던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이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내 코로나 대응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처럼 주정부들이 앞다투어 마스크 착용 의무화 해제에 나선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회복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게 해당 주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몇 해에 걸친 코로나19 사태로 시민들이 불편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등 불만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마스크 의무화 해제의 결정적 이유라는 게 중론이다. 일상으로의 복귀와 코로나와의 공생을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마스크부터 벗기로 결정했다는 얘기인데,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최근 오미크론 변이를 비롯,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줄어들고, 감염 속도도 주춤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잠시 진정세에 접어들면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낙관론이 제기됐던 지난해 6, 7월과 비교하면 일평균 신규확진자수는 여전히 당시 20배에 달하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백신접종률이 늘고 있다고는 하나 미국 인구의 65%만이 2차 접종을 완료했고 부스터샷을 맞은 경우도 27%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구의 86%가 2차 접종을 마쳤고, 57%가 부스터샷을 맞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낮은 수치다. 백악관을 비롯한 방역 전문가들이 마스크 의무화 해제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정상화에 대한 갈망에 대해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을 마스크를 벗고 극복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발상은 담배연기를 맡으면서 폐암에 걸리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 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많은 주들이 방역 완화의 상징으로 ‘노 마스크’ 카드부터 꺼낸 데에는 미국인들의 유별난 마스크 거부 정서가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황사와 미세먼지로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마스크 착용이 자연스러웠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미국인들의 마스크에 대한 반감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코로나 이전까지 미국인들에게 마스크는 통상적으로 신분을 숨기려는 범죄자나 중병을 앓는 환자들이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방역당국이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공분하는 이들이 속출하는가 하면, 손님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구한 상점의 보안요원이 살해를 당하는 일도 일어났다. 미국인들에게 마스크 착용은 코로나19가 가져온 ‘비정상’의 상징이었고, 마스크 없는 삶은 곧 정상화, 일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셈이다.
마스크를 벗음으로써 일상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언뜻 솔깃할 수 있지만 순서가 틀렸다. 마스크는 “가장 마지막까지 유지해야 할 방역조치”라는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일상으로 완벽히 돌아갔을 때 마스크를 벗을 수 있게 되는 것이지, 마스크를 벗는 순간 되찾고 싶던 일상은 더 멀어질지 모른다. 코로나 발병 이전의 일상으로 한 순간에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당분간은 코로나와의 공생을 모색해야 한다면, 섣불리 마스크를 벗어 던지기보다는 마스크를 착용한 채 점진적으로 일상으로 복귀하는 ‘새로운 정상화 (new normal)’를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태영 텍사스대 저널리즘 박사과정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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