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한 달 앞, 우려되는 '좌편향' 발언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내 생각과 다르면 ‘좌편향’으로 낙인찍고 적대적 감정을 드러낸다. 갈라치기로 내 편의 이득을 꾀한다. 식상한 레퍼토리다. 시대가 변했으니 선거 전략도 변할 법한데 여전히 과거의 악습에 젖어있다. 강력한 대선 후보가 뛰는 제1야당의 선거대책본부 인사의 퇴행적 언론관이 입길에 올랐다. 그는 공영방송 앵커 출신이다.


황상무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언론전략기획단장이 지난 5일 대선후보 토론회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기자협회와 방송 주관사인 JTBC를 싸잡아 좌편향이라고 공격하며 토론회를 무산시켰다. 진행자를 문제 삼는 것을 시작으로 기자협회가 지난 총선 때 특정정당 비례의원을 추천했다며 공세를 폈다. 당시 기자협회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추천을 철회했다. 기초적인 사실 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편향성을 지적한 데 대해 항의하자 마지못해 “확인을 못했다”며 잘못을 시인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판을 엎으려는 것이 목적인 듯 그 다음엔 JTBC 손석희 사장 편향성을 들고 나왔다. 사장에서 물러나 순회특파원으로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였다. 어떤 점이 편향적인지 설명은 물론 없었다. 너무 황당한 주장을 해서 함께 논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결국 그날 협상이 깨지며 8일 토론회가 무산됐다. 11일로 토론회가 합의됐지만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제1야당 선대본 언론전략기획단장이라는 직함이 가진 무게의 가벼움도 참을 수 없지만 1만1000명 회원을 두고 있는 기자협회와 JTBC를 좌편향으로 매도하고도 모자라 페이스북으로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했다. 급기야 한국기자협회 JTBC지회는 성명을 내고 “현장에서 팩트를 발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기자 전체를 모독했다. 낡은 언론관을 가진 국민의힘에 ‘기울어진 언론관’이라는 수식어를 부여해주고자 한다”며 “편협하고 편향된 언론관을 드러낸 황 단장에게 더 이상 공보 업무를 맡기지 않는 것이 순리다”라고 규탄했다. 기자협회도 성명에서 “협회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킨 데 대해 황 단장이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응하지 않을 경우 취재 거부 등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항의할 것을 천명한다”고 강력 대응을 밝혔다. 황 단장은 논란이 커지자 “저의 글과 발언으로 상처받으셨을 기자협회와 JTBC 선후배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물러섰다.


황 단장은 2020년 11월 KBS를 퇴사하며 “극단의 적대정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국민의힘도 작년 12월 그를 영입하며 “소신 있는 언론인”으로 추켜세웠다. 황 단장에 묻고 싶다. 본인의 좌편향 발언은 극단의 적대정치를 부추기는 발언이 아닌가. 국민의힘에 묻고 싶다. 황 단장을 추어올린 ‘소신’이 근거 없이 상대를 낙인찍어도 좋은 소신인가.


우리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고 차별했던 정부를 경험했다. 흑백의 잣대로 사상을 재단하고 편가르기 했던 아픈 역사를 겪었다. 나만이 선이고, 내게 맞서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민주주의가 질식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광기어린 낡은 사고방식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국민의 적’으로 규정하며 언론과 수시로 전쟁을 벌였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하는 발언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유사하다며 이렇게 일갈했다. “뉴스 미디어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진실을 ‘가짜 뉴스’라고 강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을 위협한다.” 황 단장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편집위원회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