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자협회가 대선후보 4자 TV 토론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건 지난해 말이었다. 그해 6월부터 대선 예비후보 초청 토론회를 열어온 기자협회는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민의당이 대선 후보를 확정하자 각 정당에 공문을 보내 4자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다. 4개 정당은 이달 들어 토론회 개최에 호응했고, 지난 4일 기자협회 주최로 대선후보 4자 토론회를 8일 TV생중계 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기자협회는 곧바로 실무협상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달 9일 치러지는 대선까지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 데다 앞으로 유력 대선후보들이 모두 모이는 토론회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해 오는 21일(경제), 25일(정치), 다음달 2일(사회) 열리는 법정토론뿐이었다. 기자협회는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4개 정당을 대표해 나온 인사들과 8일 TV 토론회를 위해 실무협상을 진행했다.
참석자들은 토론회 주제와 진행 방식, 사회자 선정 등을 논의했다. 회의가 1시간 반 이상 이어지던 무렵 황상무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언론전략기획단장은 대뜸 주최사인 기자협회와 중계를 맡을 예정이던 JTBC의 편향성을 문제 삼으며 토론회 참여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황 단장은 협상장에서 “손석희씨가 특정 쪽으로 많이 편향돼 있는 건 국민이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그분이 아직 사장님”이라며 JTBC가 방송을 맡는 게 부적절하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손 사장은 이미 현직에서 내려와 순회특파원 보임을 받고 지난해 11월 출국한 상태다.
KBS 메인뉴스 앵커를 지낸 황 단장은 “저도 기자협회 출신(회원)이지만, 기자협회는 특정한 정당과 특수한 관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기자협회가 토론회를 주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황 단장이 내민 근거는 사실과 달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기자협회를 포함한 언론현업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의 위성정당이던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언론인 출신을 추천했다가 논란이 일자 모든 단체가 후보 추천을 철회했었다. 그런데도 황 단장은 “기자협회만 철회하지 않았다”며 트집을 잡았고, 기자협회 측은 당시 추천 철회 내용을 담은 기사로 반박했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인사가 “(기자협회에 대한 오해가) 해소가 됐냐”고 묻자 황 단장은 “해소가 됐다”고 말했다.
황 단장은 오해가 해소됐다면서도 윤석열 후보의 건강상 이유 등을 들어 TV 토론 실무협상을 결렬시켰다. 결국 8일 토론회 개최는 무산됐다. 그는 실무협상이 깨진 다음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제 협상은 제가 결렬시키고 나왔다”며 “주최 측인 기자협회가 심하게 좌편향돼 있고 방송사는 종편 중 역시 좌편향된 JTBC였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황 단장의 어이없는 좌편향 발언에 기자협회와 JTBC지회는 7일 각각 황 단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과와 함께 거취를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JTBC지회는 “취재 현장에서는 ‘JTBC는 대체 어디 편이냐’는 말을 들을 정도다. ‘편이 없는 것’이 정치적 편향성이라면 몰라도 ‘가장 좌편향 됐다’는 말에 수긍할 수 없다”며 “이번 TV 토론 무산 사태에서 국민의힘이 드러낸 것은 좌와 우를 가르며, 네 편과 내 편을 따지는 ‘낡은 언론관’”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도 성명에서 “황 단장이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항의하겠다”고 경고했다.
기자협회는 황 단장 논란과 별개로 4자 토론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관 방송사를 종합편성채널 4개사(MBN·JTBC·채널A·TV조선)와 보도전문채널 2개사(연합뉴스TV·YTN) 등 6개사로 확대하고 협상에 나섰다. 4개 정당, 6개 방송사와 논의 끝에 오는 11일 오후 8~10시 토론회 개최를 확정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심상정 정의당,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참여한다. MBN이 토론회 방송을 준비하고, 6개 방송사가 동시에 생중계할 예정이다.
토론회 개최가 성사된 지난 7일 황 단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과의 글’을 게재했다. 황 단장은 “기자협회와 JTBC가 편향적이라고 하고, 페이스북에서 다시 한 번 거론한 것은 도가 지나쳤음을 인정한다. 저의 글과 발언으로 상처받으셨을 분들께 사과드린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주의할 것으로 약속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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