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거친 바다를 지나 사도섬에 도착했다. 인적 드문 여객선 터미널을 통과하며 벽에 붙은 포스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부유선광장(浮遊選鉱場)에서 야간 라이트업 행사를 한다는 내용이다. 부유선광장은 광산 마을을 발아래 두고 바다를 직접 마주한 곳이다. 근대의 콘크리트 시설물들이 주변을 압도한다. 취재를 위해 이틀 저녁을 연이어 찾아갔지만 사람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몇 개의 조명만이 불빛 색깔을 바꿔가며 차가운 콘크리트 더미를 비추고 있었다. 기억에 남는 사도광산의 기괴한 풍광이다.
광산을 향해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광산 시설물들이 띄엄띄엄 이어진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며 일본은 사도광산에서도 전쟁 물자 확보에 나섰다. 조선인들도 대거 동원됐고, 착암부와 운반부 등 상대적으로 위험한 갱도 내 채굴 작업에 투입됐다. 갱도 주변에서 마주치는 외부 시설물에서의 작업은 대부분 일본인들의 차지였다. 굳이 갱도까지 들어가 보지 않아도 어두웠던 일본 근대의 그늘은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산 정상이 V자형으로 움푹 파인 사도광산의 상징 ‘도유노와레토(道遊の割戸).’ 에도시대 때 금맥을 찾아내 손으로 파 내려간, 이른바 ‘전통적 수공업에 의한 금 생산 시스템’을 보여주는 그럴듯한 모습이다. 사도광산의 모든 홍보물에 대표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V자의 아래쪽 끝부분엔 커다란 동굴이 있다. 이곳은 에도시대와는 무관하다.
1800년대 후반에 광산의 재개발에 나서며 다이너마이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니가타현의 <사도금은산 시찰자료집>에는 ‘지금의 산 형태가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쓰여 있다.
이런 풍광들을 지나다 보면 사도광산의 핵심인 갱도에 다다른다. 갱도 입구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가면 메이지 이후 근대기의 갱도, 오른쪽은 에도시대의 갱도이다. 근대는 스산하고, 에도는 괴이해 무섭기까지 하다. 보는 사람은 없는데 어둠 속 밀랍인형들은 에도의 현장을 끊임없이 재현한다.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면 10분 정도에 갱도를 빠져나올 수 있다. 조선인들이 노역에 시달렸던 근대기의 갱도에는 그런 꾸밈은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생생함이 느껴진다.
사도광산과 직접 관련된 주요 풍경은 이 정도다. 1601년을 기점으로 채굴을 중단한 1989년까지, 400년 가까운 세월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모습이 형성된 곳이다. 니가타현과 사도시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을 지켜보던 일본 정부는 어느 날 갑자기 그 역사를 절반으로 잘라낼 것을 요구했다. 니가타현 관계자는 사도광산만의 세계적인 가치를 찾아내라는 정부의 지적이 계속됐고, 그렇게 다다른 곳이 ‘에도시대 수공업에 의한 금 생산 공정’이라고 답했다. 절반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하고, 전반부의 역사만 평가받자는 것이었다. 더욱이, 앞서 길게 얘기했듯 눈에 보이는 대부분 풍경은 ‘근대’의 것들이다.
결국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후보 추천서에서 근대를 뭉텅 도려내고, 저 옛날 에도시대의 이야기만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설령 에도시대의 가치가 세계적이라고 해도 여기서 드러나는 모순이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무모함으로까지 다가온다. ‘강제징용 언급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이런 질문이 떠오르지만 다른 이유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일본이 이렇게까지 무모할 수 있었던 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세계유산 등재 심사 과정에서 한국이 이의를 제기하면 등재는 어려워진다. 난징대학살과 일본군 위안부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이 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일본이 주도적으로 나서 이런 원칙이 만들어졌다. 당사국 간 합의에는 기한도 없다. 약속만 하고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던 ‘전체 역사를 기재하라’는 군함도의 권고는 일본의 발목을 움켜잡았다. 일본은 자기가 파 놓은 함정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국내 언론 처음으로 사도광산을 현장 취재하고, 첫 보도 직후 일본 문화청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네스코에 정식 추천서를 제출하는 기한을 앞두고 일본 내에서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추천하자니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게 뻔하고, ‘보류설’이 흘러나오자 일본 내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올여름 참의원 선거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어렵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일본, 비단 사도광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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