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새해 벽두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임현석 동아일보 기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됐다는 소식이다. 1월1일자 조선일보 지면엔 그의 사진, 당선 소감과 함께 ‘동아일보 기자’ 등 간단한 이력이 실렸다. 이때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알던 그의 당선 사실은, 지난 7일 이기문 조선일보 기자가 관련 칼럼을 쓰며 더욱 널리 알려졌다. 당선자의 휴대전화 번호가 ‘없는 번호’로 뜨는 탓에 그를 찾아 나서며 겪은 해프닝을 칼럼에 썼는데, 이 칼럼이 화제가 됐다.
임현석 기자는 “기자와 작가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유지하려 번호를 나눴는데, 신경을 못 써 번호가 소멸한 줄 몰랐다”며 “사실 경쟁사에 작품을 내는 거니 가명을 써야 하나 생각도 했다. 직업을 안 쓰니 동명이인은 많겠지 했고 당선됐다면 필명이어도, 주소만 있어도 저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담담한 이유는 신춘문예 도전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대학생 때부터 신춘문예를 비롯한 여러 등단 공모전에 도전했고, 번번이 실패했다. 작가라는 꿈에만 계속 매달릴 수 없어 글을 쓰는 직업, 기자를 선택한 이후에도 등단의 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공모 시즌에 압축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 탓에 기자 생활 8년 중 절반 정도는 신춘문예에 응모하지 못 했지만 그 기간만 되면 임 기자는 매번 설렜다고 했다.
지난해도 그는 조선일보를 비롯해 모든 중앙 일간지에 작품을 보냈다. 단편소설은 두 군데, 나머지는 시 부문으로 응모했다. 당선된 ‘무료나눔 대화법’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그 단편을 조선일보에 보낸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200자 원고지 80매 분량의 글이 조선일보 단편소설 기준과 딱 맞아서였다. 임 기자는 “지난해 카이로 특파원으로 나가 있었는데, 저녁에 개인 시간이 나서 밀도 있게 글을 쓸 수 있었다”며 “이번 ‘무료나눔 대화법’도 그 때 썼다. 카이로는 공산품이 굉장히 비싸다고 들어서 혹시 몰라 전자기기 여분을 중고나라, 당근마켓 등을 통해 구입했는데 그게 떠올라 키워드로 글을 썼다”고 했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목표와 행위를 남겨두면, 소재를 찾거나 주변을 관찰하는 시선은 작가보다 기자에 가까웠다. 예를 들면 사랑, 우정, 의리 같은 전통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중고 거래’ 같은 새로운 소재를 찾고자 하는 방식이 그랬다. 임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느꼈던 감정 역시 글에 자연스레 녹였다고 했다.
그는 “세대와 연령별로 갈등과 견고한 편견들을 갖고 있고 자기만의 논리 안에 갇혀 대화할 창구가 없는데, 그런 것들이 사실은 되게 사소한 걸로도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어떻게 하면 만남이 이뤄지고 얘길 해볼 수 있나 했을 때, 당근마켓 같은 플랫폼이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봤다. 기자이다 보니 우리 사회 필요한 이야기가 뭘까 생각하는데, 이번 소설이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덕분일까. 임 기자의 글은 심사위원들로부터 “날렵하고 영리하며 군더더기 없는 작품” “단편소설이 지녀야 할 미덕들을 거의 다 갖추었다” 는 극찬을 받았다.
이쯤 되면 회사 선배인 장강명씨처럼 전업 작가가 되고 싶지는 않을까 궁금했다. 당선 소감에서 “소설가란 자격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을 믿는다”던 그는 역시나 “기자로서의 삶, 소설가로서의 삶 둘 중 한 가지를 택하기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임 기자는 “문학은 거창하게 도달해야 할 목표나 엄청난 가치라기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이라 생각한다”며 “문학적 태도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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