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번역본이 발간되자 그 속에 담긴 내용과 함께 주목받은 건 번역자로 이름을 올린 4명의 기자들이었다. 모두 10년차 이하로, 평소 스터디 모임인 ‘기사 연구회’에서 함께 기사와 취재에 대해 고민을 나누던 사이였다. 번역에 참여한 기자들은 이 가이드라인이 일선 기자들이 마주할 수 있는 세세한 문제까지 살피고, 규정마다 책임자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4일 발간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에는 취재 보도뿐만 아니라 소셜미디어 이용이나 주식 투자와 같은 일상생활, 심지어 가족과 관계된 사안에서도 기자가 지켜야 할 기준이 책 한 권 분량으로 담겨 있다. “시의원과 매주 골프를 즐기는 시청 출입 기자는 골프장에서 가끔씩 업무를 논의하기만 해도 시의원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질 위험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취재 대상이거나 차후 취재 대상이 될 수 있는 개인 혹은 단체로부터 그 어떤 선물이나 티켓, 할인 혜택, 대출 상환 혜택도 제공받아서는 안 된다.(회사 로고가 있는 머그컵이나 모자 같은 명목 가치 25달러 미만의 기념품은 예외로 한다)” 등 매우 구체적인 기준들이다.
기자들이 번역하며 느낀 건 무엇보다 뉴욕타임스가 현장에 있는 기자들과 함께 고민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갔다는 점이다. 번역에 참여한 조문희 경향신문 기자는 “‘취재 분야와 관련된 주식을 갖고 있으면 단계별로 처분해야 된다’ 같은 조항이 있다. 문서에 쓰기에는 사소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뉴욕타임스가 기자들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각 취재처마다 기자들의 의견을 모아 만든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저건 좀 아닌 것 같은 기자가 있어도 그걸 비판하기에는 우리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기준이 없으니 조정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며 “사람마다 윤리적인 기준이 다른데 뉴스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기준을 세울지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차원에서 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취재 현장에 있는 기자라면 누구나 자잘한 고민이나 윤리적 딜레마를 마주한다. 각 행동 기준마다 관련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직책을 가이드라인에 명시했다는 것도 기자들에게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임주언 국민일보 기자는 “세세한 부분까지 문의할 수 있는 직책이 나와 있는데 굉장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봤다”며 “그동안 선배나 부장에게 물어보는 경우가 많거나 혼자 해결을 하곤 했는데 이 부분은 국내 언론사도 어렵지 않게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박동해 뉴스1 기자는 “기자들이 일하며 실질적으로 겪고, 느꼈던 것들이 있는데 번역 과정에서 그 상황이나 의미를 잘 담아낼 수 있지 않았나 싶다”며 “결국 현장의 룰이 가장 중요하고, 상식적으로 느끼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구체적으로 지침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기자들이 일하는 데 차이가 클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제안을 받고 지난해 7월부터 번역에 나선 기자들은 초벌 번역, 검수, 재교정, 편역 등의 과정을 거쳐 반년 만에 작업을 마무리했다. 국내에 있는 뉴욕타임스 관계자에게 따로 취재해 윤리강령에 나오는 뉴욕타임스의 각 직책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정리할 정도로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전현진 경향신문 기자는 “국제 기사를 써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본격적으로 뭔가를 번역하는 건 다들 처음이었다”며 “이번 작업을 계기로 기사 연구회 기자들과 비영리 매체인 프로퍼블리카의 탐사 보도나 퓰리처상 수상 기사 등의 번역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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