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

[이슈 인사이드 | 노동] 전혜원 시사IN 기자

전혜원 시사IN 기자

“저도 기자 준비했었는데.” “그러셨어요? 아아...” 지상파 3사 중 한 곳의 방송작가와 나눈 대화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30대 여자 언론계 종사자. 그는 보도 프로그램 원고를 쓰고 나는 주간지 기사를 쓴다. 누군가를 섭외하고 또 취재한다. 발제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런데 내가 발딛고 선 땅은 그가 선 땅과 전혀 다르다. 나는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될 수 없다. 그는 몇 년 넘게 일하다가도 언제든지 말 한마디로 계약이 종료될 수 있다. 나는 4대보험과 연차휴가를 적용받지만, 그는 고용보험 외에는 별다른 안전망이 없다. 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지만 그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흔히 프로그램은 PD가, 뉴스는 기자가 만든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이템을 발굴하고 사람을 섭외하며 원고를 쓰는 방송작가가 없이는 방송이 나오지 못한다. 방송사들은 이들을 ‘프리랜서’로 간주해왔다. 프리랜서의 사전적 의미는 ‘일정한 소속이 없이 자유계약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방송작가들이 실제로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30일 고용노동부는 지상파 3사 보도·시사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 363명 중 152명(41.9%)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KBS는 167명 중 70명, MBC는 69명 중 33명, SBS는 127명 중 49명이 근로자로 인정받았다. 이들은 방송 소재를 정하거나 원고를 수정할 때 방송사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프리랜서’라며 아무런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으니, 이를 시정하라는 취지다.


모든 게 바로잡혔을까? 근로감독 결과가 발표되기 한 달 전, MBC ‘뉴스외전’ 작가 3명이 구두로 재계약 불가를 통보받았다. 근로감독 발표 뒤 KBS는 작가들에게 ‘프리랜서’와 ‘근로자’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근로계약을 택한 경우 2년까지 근무할 수 있고 재계약은 없다고 했다고 미디어오늘이 보도했다. 기간제법상 계약직을 2년 넘게 쓰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궁금하다. 작가가 하는 일은 방송 3사의 상시·지속 업무가 아닌지. 방송사가 작가의 노동에 깊이 개입하고 지시할 필요가 정말 없는지. 언론의 공공성을 외치는 언론노조 산하 3사 노동조합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언론은 플랫폼 노동에 대해, ‘무늬만 프리랜서’ 문제에 대해 열심히 기사를 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개탄한다. 그런데 언론이야말로 노동시장의 축소판이다. MBC는 구두로 해고를 통보한 ‘프리랜서’ 작가에게 영화 ‘태일이’ 소개 대본을 쓰게 했다. KBS는 2020년 기준 1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직원이 전체의 46.4%라고 밝혔다. 방송 3사나 조선일보 등 큰 언론사와 여타 작은 언론사는 초봉부터 천지차이다.


큰 언론사의 정규직이 되려면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시도 아닌 ‘언론고시’를 통과한 보상 치고는 너무 큰 것 아닌가? 어마어마한 초봉 차이는 기자로서의 숙련과 어떤 관련이 있나? 언론사 뉴미디어를 떠받치는 수많은 계약직의 숙련이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은 작은 지역언론사에서부터 숙련을 쌓아 뉴욕타임스 기자가 된다. ‘어느 회사 정규직으로 입사했다는 우연’이 너무 큰 차이를 만들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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