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쥐트도이체차이퉁(Süddeutsche Zeitung)은 당시 바이에른주 재무장관 대변인이 여러 언론사에 연락을 취해 바이에른주 사민당(SPD) 전당대회에 관한 보도를 방해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르면 그는 ZDF(제2공영방송)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뉴스에서 SPD 전당대회를 다루지 말 것을 요구했고, 같은 날 ARD(제1공영방송)에도 연락을 취해 관련 보도 계획을 문의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 공영방송사인 BR(바이에른방송)이 재무장관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관련 성명을 비판하는 보도를 내자 재무장관 대변인이 ‘저널리즘 측면과 과학적인 내용 면에서 부적절하다’며 전화로 항의한 사실이 알려졌다. BR측은 대변인 전화가 보도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관련 기사는 삭제되었다.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폭로는 더 있었다. 같은 해 차이트 온라인(Zeit Online)은 ZDF에서 뉴스편집자로 10년간 종사했던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인들이 공영방송 보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자주 있었음을 다뤘다. 그는 2000년 초반 기민당(CDU) 사무총장이 ZDF 보도국에 전화를 걸어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를 막으려 여러 차례 시도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 11월에는 슈피겔 온라인(Spiegel Online)에서 당시 바이에른주 재무장관이 기사당(CSU)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던 2003~2007년 동안 ZDF 대표에게 여러 차례 서신을 보내 CSU 관련 보도를 신중히 할 것을 요구한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결국 당사자인 대변인은 사임하게 되었고,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와 사회에서도 CSU를 규탄하는 비판과 성명이 이어졌다. 이상은 ‘2012년의 CSU-미디어사건’(CSU-Medienaffäre 2012)의 전말이다.
정치권의 공영방송 보도 개입, 특히 ZDF에 대한 보도 개입이 가능했던 건 당시 ‘ZDF-텔레비전위원회’(ZDF-Fernsehrat)의 위원구성에서 정치인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ZDF-텔레비전위원회는 ZDF 운영과 관련해 대표이사 선임·해임, 예산 결정, 채널 운영 결정·감독 등을 행하는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다. 사회 내 다양성을 반영하기 위해 독일연방 내 협회와 주·연방정부 기관에서 파견한 대리인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사건 발생 당시 본디 목적과는 달리 정치 세력에 취약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실제로 CSU-미디어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바이에른주 재무장관 및 대변인의 직속상관인 당시 CSU 사무총장, 그리고 CSU 의원 등 세 명이 ZDF-텔레비전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들은 위원회에 부여된 임무인 채널 감독을 한다는 명목으로 ZDF에 개입해왔던 것이다.
사건에 대한 폭로와 해당 사실이 확인된 후 라인란트주와 함부르크주에서는 당시 ZDF-텔레비전위원회 위원구성 방식에 정치개입이 가능한 문제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냈고, 2014년 연방헌재는 위원회 조직을 새롭게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전에는 ZDF-텔레비전위원회 위원 77명 중 최대 52명까지 정치인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이 판결에 따라 구성방식이 대폭 조정되어 60명 중 18명까지만 가능하도록 정치인의 비율이 제한되었다. 이로써 생긴 공석에는 이민자나 성소수자, 무슬림단체의 대표자가 배정되었다. 쥐트도이체차이퉁 보도로 시작된 사건은 이렇게 ZDF-텔레비전위원회 개편까지 이어지면서 일단락되었다. 물론 이 사건으로 인해 독일 공영방송이 정치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고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로운 공영방송 운영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조처한 연방헌재의 판결이 조금이나마 개선의 계기가 되었음은 자명하지 않을까.
벌써 10년이 지난 사건인 ‘2012년의 CSU-미디어사건’이 갑자기 떠오른 데는 최근 우리나라 상황이 그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무리 없어 보인다. ‘다양성 보호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여 공영방송의 조직은 정부로부터 거리를 둔다는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언급한 연방헌재의 판결은 비단 독일에서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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