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가 해외 미디어 움직임과 미디어 산업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해외 미디어 돋보기'를 신설합니다. 국기연 글로벌 이코노믹 워싱턴특파원과 손재권 더 밀크 대표가 월 1회 번갈아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미국인이 거주지 인근의 바이러스 확산 실태와 방역 지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지역 신문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러나 바로 이 시기에 미국 지역 신문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부터 지역 신문이 사라지는 ‘지역 언론 사막화’ 현상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코로나19 대유행기에 경영난에 직면한 지역 신문이 앞다퉈 문을 닫아 지역 신문이 멸종 위기를 맞았다고 언론 전문 매체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CJR)가 진단했다. 일부 지역 신문은 공식으로 폐간하지 않은 채 형식상 웹사이트나 일부 인터넷판만 남겨두는 ‘유령 언론’으로 전락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장기화하면서 구독자 감소, 광고 수입 감소, 제작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지역 신문이 무더기로 문을 닫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0년 사이에 문을 닫은 미국의 지역 신문은 2200개가량이다. 이는 전체 지역 신문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지난 2008년부터 2020년 사이에 언론계 종사자 숫자도 절반으로 줄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UNC) 허스먼저널리즘스쿨 집계에 따르면 코로나19 대유행기에도 미국에서 1년에 100개가량의 지역 신문이 문을 닫고 있다.
지역에서 신문사가 사라지면서 일간 또는 주간 신문이 원천적으로 주민에게 배달되지 않는 지역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 언론계는 이를 ‘언론 사막화’(news desert) 현상이라고 부른다.
◇언론 사막화 어디까지 가나
UNC 허스먼저널리즘스쿨이 2020년에 발표한 ‘사라지는 신문, 언론 사막화 확대’(Vanishing Newspapers-The Expanding News Desert)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신문은 전국지 3개, 주요 도시와 인근 지역의 메트로-지역지 157개, 커뮤니티 신문 6576개이다. 이는 일간지와 주간지 등 비 일간지를 모두 합한 것이다. 미국의 신문사는 2004년에 약 9000개가량이었으나 2019년 말에 6700개가량으로 줄었다.
2020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주 4회 이상 발행하는 일간 신문은 1260개이고, 주간지 또는 비 정기 발행 신문이 5470개가량이다. 미국의 신문 중에서 발행 부수가 1만5000부 이하의 소규모 지역 신문이 전체의 4분의 3에 이른다.
미국은 3143개의 카운티(군)로 구성돼 있다. 2020년 기준으로 이 중에서 일간과 주간 지역 신문이 한 개도 없는 카운티는 200개가량이고, 일간지가 한 개도 없는 카운티는 전체의 3분의 2가량이다. 현재 미국에서 신문을 통해 거주 지역 소식을 접할 수 없는 카운티가 1800개에 이른다고 UNC가 밝혔다. 이는 2020년 기준이기 때문에 그사이에 줄잡아 200개 이상 카운티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CJR)에 따르면 미국에서 언론계 종사자는 2008년부터 2018년 사이에 7만1000명에서 3만8000명으로 절반가량 줄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폐업한 신문사 증가로 인해 언론계 종사자는 지속해서 감소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에 해고, 일시 해고, 감봉 등을 당한 언론계 종사자가 3만7000명에 달했다고 CJR이 밝혔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은 어디 갔나
미국의 민간 연구기관인 ‘파이브서티에잇’(538)은 지역 신문에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지역 신문 웹사이트 방문자가 8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이 기관이 밝혔다. 그렇지만, 미국 최대 지역 신문 소유주 가넷(Gannett)은 코로나19 대유행 전후인 2019년과 2020년 사이에 광고 수입이 35%가량 줄었다. 가넷을 비롯한 지역 신문 소유주는 폐간, 직원 해고, 감봉, 무급 휴가 등으로 경영난에 대응했다.
미국은 큰 나라이고, 신문사가 전국적인 보급망을 갖추기 어렵다. 전국지를 표방하는 USA 투데이도 대체로 가정이나 직장 배달이 아니라 편의점 등에 신문을 보급하거나 우편 배달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급 도시나 커뮤니티에서 발행하는 지역 신문이 없으면 지역 소식을 접하기가 매우 어렵다.
언론 사막화로 지역 신문이 사라지면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경고음이 나온다. 미국의 지역 신문 ‘스테이트하우스 리포트’의 발행인 앤디 블랙은 최근 기고문에서 “지역 신문이 사라지면 커뮤니티의 연결 고리가 없어진다”면서 “이렇게 되면 지역 스포츠팀, 학교, 비즈니스 개발 등에 관한 소식을 알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역 특화 뉴스가 사라짐에 따라 지역 주민 간 응집력이 약화하고, 지역 소속감도 잃어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언론 사막화의 폐해에 관한 ‘펜 아메리카’(PEN America) 보고서도 “지역 뉴스가 주민 참여를 촉진해왔다”라면서 “이것이 사라지면 주민들이 지역 정치에 관한 소식을 몰라 각급 선거에도 참여하지 않는 등 정치에 무관심해져 민주주의가 후퇴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신문이 없으면 지방 정부와 지역 기업의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기능도 사라진다고 이 보고서가 밝혔다.
코로나19 대유행 시대에 지역 언론사가 경영난에 빠지자 헤지 펀드, 사모펀드를 비롯한 대형 금융 자본이 지역 언론사 사냥에 나섰다. 헤지 펀드인 알덴 글로벌 캐피털(Alden Global Capital)은 지난해 6월에 뉴욕 데일리뉴스, 시카고 트리뷴, 볼티모어 선 등을 운영하던 트리뷴 퍼브리싱을 6억3000만 달러에 인수해 미국에서 소유 언론사가 두 번째로 많은 회사가 됐다. 또 다른 헤지 펀드인 포트리스 투자그룹은 게이트하우스 미디어를 앞세워 미국 최대 신문 그룹인 가넷을 14억 달러에 인수했고, 채텀 애셋 매니지먼트는 지난해 8월 마이애미 헤럴드 등을 소유한 맥크라치 그룹을 인수했다. 이렇게 경영난에 빠진 언론사를 무더기로 사들이는 금융 자본은 ‘무덤 도굴꾼’으로 불린다. 영국의 가디언은 “현재 미국 언론사의 절반가량을 금융 기관이 소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결책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언론 사막화를 막으려고, 정부와 시민 사회가 동시에 나서고 있다. 우선 연방 정부 차원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더 나은 미국 재건 법안’(Build Back Better)에 지역 언론 지원 내용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지역 언론을 미국 사회의 ‘인프라’로 본다는 얘기다. 이 법안은 민주당의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의 반대로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으나 조만간 의회가 수정안을 만들어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이 법안에는 법 시행 첫해에 지역 언론사에 2만5000달러, 지역 언론 종사자에 향후 4년 동안 연간 1만5000달러의 세금 공제 혜택을 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정부가 지역 언론에 향후 5년에 걸쳐 16조7000억 달러를 지원하게 된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또 정부를 감시해야 할 언론사가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가 정기 간행물의 우편요금을 할인해준 전례가 있고, 코로나19에 따른 경제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 지원금을 대줄 때 이미 수많은 지역 언론사가 이 돈을 받았다. AP 통신은 연방 정부의 지역 언론 지원안에 찬성하는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12명 이상이라고 전했다.
지역 신문사가 지역 방송국, 민간 연구기관, 비정부기구 등과 활발하게 연대하는 자구책을 세우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또 일부 시민 단체나 기관이 지역 신문사를 아예 인수하기도 한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지역 신문사가 빠르게 인터넷 매체로 전환하는 디지털화 작업을 서두르는 것 이외에 회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뉴욕시 허드슨 밸리에서 무가지로 발행하던 지역 주간지 ‘이그재미너 미디어’는 온라인으로 전환하면서 월 5.99 달러를 받기 시작했다. 워싱턴 DC에서 발행되는 지역지 ‘워싱턴 인포머’(Washington Informer)는 흑인 인권 이슈에 초점을 맞춘 집중적인 보도로 구독자가 최근 5만명으로 2배가량 늘었고, 발행 지면도 36면에서 56면으로 늘어나는 보기 드문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국기연 글로벌 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